201783일 목요일, 맑음


이틀만에 스트라스부르그를 떠나는 건 좀 아깝다. 세상에 그 많은 나라와 장소가 있는데 어느 한 곳에 발길이라도 스쳤다는 인연은 대단한 것이다. 이렇게 찬란한 문화유산을 일쿠고 또 보전한 역사를 보면 그들의 놀라운 지성과 인성과 장인정신에 고개가 숙여진다.


이번에 유럽에 나와서 느낀 소감 중에 인상에 남는 일은 정말 아랍인들이 많이 늘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삶의 자리인 고국을 떠나와 새 나라 새 땅에 뿌리 내리며 많이 고생스럽겠다는 안쓰러움이 든다. 엊저녁 식사 후에 가까운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는데 많은 중동인들과 아이들, 그만큼의 젊은 여인들이 무리지어 있었다. 내가 고국에서 이주여성 인권운동에 마음을 쓰고 있기에 그들이 더 눈에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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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을 싸고 네비게이션에 이탈리아 코모 호수를 치니 거리가 450km. 프랑스를 콜마르, 뮐루즈까지 남으로 달리다 스위스 바젤로 건너가 루체른을 동남으로 가로질러 고타르 고개를 넘어 밸린초나를 지나 이탈리아로 가는 길이다. 1030분에 스트라스부르그를 떠났다. 하루종일 가며 세상구경을 하다보면 오늘 중에 도착하겠지 맘먹고 차분히 떠났다


프랑스만 해도 ’ ‘’ ‘이다. 그 넓은 땅에 끝도 안 보이게 옥수수를 심었는데 조금 자라면 베어서 목축업을 하는 사료로 쓰인다.  지구상에서 날마다 10만명이 굶어죽지만 이 풍요한 나라에서는 사료만 키운다. 해바라기는 기름을 짜고 간혹 담배를 키우기도 하지만 구릉진 언덕엔 포도를 경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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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스위스 바젤로 들어서자 ’ ‘’ ‘이 나타나고 달리는 길은 ’ ‘’ ‘이다. 우리나라처럼 70%가 산이지만 깎아지른 험한 산밑에 사방으로 굴을 뚫어 두더지처럼 달린다. 코모까지 오는 길에 통과한 굴만 해도 55! (보스코가 호기심 삼아 자를 그려가면서 세어보았다.) 산이 높을수록 골짜기에는 끝간데모를 호수들이 이어지니까 오늘의 여로는 들들들’, ‘산산산’, ‘굴굴굴’, 그리고 물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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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휴게소의 화장실은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최고다. 이번 여행에서 보면 유럽인들의 생활태도나 역사흔적이 변함없는 것처럼, 화장실 문화도 30년과 똑같고 앞으로 30년 후에도 아마 변함없을 듯하다. 휴게소 화장실을 가면 사용료를 받는데 1프랑이나 1유로는 우리 돈으로 치면 무려 1300. 단 돈을 내지만 그 휴게소에서 물건을 사면서 화장실 사용료 영수증을 함께 내면 80센트를 깎아준다


굴굴굴 하다 9km 짜리도 통과하고 유명한 고타르 고개에서는 열개의 작은 굴들을 지나더니만 무려 17km짜리 '고타르 터널'을 통과했다.  그동안 몽블랑을 다섯번쯤 넘었고 재작년에는 그랑쌩베르나르를 넘었는데 올해는 고타르 고개를 넘었다. 다만 굴을 보수하는 공사가 있어 무려 한시간 20분을 가다서다로 대기해야 했다. 이럴 때는 스틱 운전이 정말 힘들다


트라픽이 끝나고 다리도 쉴 겸 쉼터에 잠시 선 곳에서 집시 가족이 불판에 닭갈비와 돼지고기를 굽는다. 점심을 빵으로 떼우고 출출한 시간인데 나를 불쌍히 본 집시아저씨가 돼지고기를 손바닥 만한 크기로 잘라주며 먹으란다. 보스코는 절대 안 받아먹겠지만 나는 쥐약 아니면 다 받아먹고 심지어 한 조각 더 얻어다 보스코에게 먹이기까지 했다. 숯불에 얼마나 맛나게 구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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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에 대장집시는 내게 작업을 걸며 고장난 자동차 고치게 돈 좀 보태란다. “오늘은 당신을 만날 줄 몰라 미처 준비를 못했지만 숙명으로 다음에 또 당신을 만나면 돈을 보태마고 약속하고서 떠났다. 아이들 너댓이 딸린 까뭇까뭇한 부인은 부스스한 얼굴에 목걸이와 반지, 팔찌, 귀걸이, 발찌... 그니의 재산 전부를 걸고 다니는 행색이다. 있어도 없어도 행복한 그들이야 말로 자유로운 영혼이다.


530분이 넘어서야 이곳 코모 관자테에 도착하여 빵고 신부와 한 달을 함께 지낼 본당에 들러 짐을 내려놓고 성당 가까운 피자집에서 피자 한판을 사다가 호텔로 가져와 저녁을 떼웠다. 그동안 독일어, 프랑스어, 심지어 영어 때문에 맘고생이 컸는데 이탈리아어 지역으로 넘어오면서 말문이 트이니 완전히 고향 땅에 온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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