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731일 월요일, 맑음


아침에 일어나 침대보와 이불을 세탁기에 넣고 쓰레기를 모두 챙겨 갖고 내려갔다. 승강기 안에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미안해 아무도 안타기를 바랐는데 바로 아래층에서 후덕하게 생긴 중년 아줌마가 탄다. 미안하다고 했더니 괜찮다고 손사래를 친다. 승강기가 서자 내려서는 현관문을 열고 나를 기다려준다. 쓰레기를 어디다 버리나 두리번거리자 한쪽 창고의 열쇠를 열고 초록색 통엔 음식물 쓰레기를, 쇄통엔 검은 봉지를 직접 넣어 주기까지 한다. 고맙다고 배꼽 인사를 하니 웃으며 어서 들어가란다. 남 앞에서 열쇄는 왜 그리도 잠을쇄에 안 들어가는지.... 저만치 가던 아줌마가 눈치를 채고 다시 돌아와 자기 열쇄로 현관문까지 열어 준다. 경례를 부치는 폼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니 깔깔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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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내가 불어를, 아줌마가 우리말을 한마디도 못한다 해도 서로의 따사론 마음을 나누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역시 인간은 말 이전에 심성의 결이 중요하다.

이것저것 정리하고 챙기고, 관쟈테에 두고갈 물건과 바로셀로나 가져갈 가방을 챙기는 데도 머리를 써야 한다. 들고갈 가방 두 개를 챙겼다. 보스코와 나 각기 하나씩. 그런데 보스코 가방이 너무 무거워 열어보니 책이 가득하다. 아니 이 사람은 구경을 하러가나, 공부를 하러가나? 가져가더라도 열어도 안 볼 책을 들고 다니는 게 교수들의 특성이다. 거지들이 깡통을 차마 못 내려놓듯이.... 차에 물건을 모루 갖다실은 뒤여서 더는 잔소리를 안했다.


10시에 빵기네 집에서 나왔다. 북쪽에 있는 친구집까지는 4시간이면 족하지만 츄리히까지 우선 가서 시간이 닿는 대로 츄리히의 12세기에 성당과 역사적인 건물과 박물관을 둘러보자고 일찍 나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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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에 로잔느를 지나려니까 김원장님과 문쌤과 함께 그랑쌩베르나르 고개를 넘어 달리던 일이 새삼스럽다. 콩알만큼 작은 차에 그 많은 짐과 4명의 어른이 타고 짐에 묻혀 달리단. 짐에 파묻혀 밖이 안 보이므로 창밖의 경치를 앞의 두 남자가 중계하고 뒤에 앉아 짐에 파묻힌 우리 두 여자는 창밖의 경치를 상상으로만 감상하면서 꼬불꼬불 알프스산길을 이리저리 밀리면서도 즐겁기만 하던 추억이 눈물나게 그리웠다. 다음에 두 분과 한 번 더 여행할 기회를 만들어야지.


고속도로를 2시간 넘게 달리다 배른 부근에서 인터라켄이란 이정표를 보자 보스코가 슬슬 발동을 건다. "우리 60Km 정도 더 돌면 되는데 인터라켄에 가서 융프라우나 올려다보고 갈까?" 나 역시 이 더위에 츄리히 아스팔트 열기 위를 거닐고 싶지 않아 인터라켄 나가는 길이라는 안내가 나오자 미련 없이 핸들을 그쪽으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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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프라우(4158m)와 묑크(4107m) 두 봉우리의 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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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1시가 넘고 배는 고픈데 산을 불 욕심에 산이 빨아들이는 힘에 끌려 달리고 또 달렸다툰호수를 지나고 융프라우 이정표만 보고 달렸다. 네비는 개무시하고 융프라우를 멀리서 보고는 아름다운 여자에게 첫눈에 반한 순진한 총각처럼 필이 팍 꽂혔다. 빈데르발트까지 올라갔는데 융프라우 밑으로 우리를 데려다 준다는 기차역에서 표를 파는 아줌마가 오가고 산비탈을 조금이라도 걷자면 네 시간은 걸린다고 해서 친구와의 선약 땜에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섰다.


6시쯤 스위스 최북단, 라인팔이 있는 샤펀하우센에 있는 친구집에 도착했다. 2년 전에 방문한 일이 있어 친숙한 곳으로 남편 베아트도 우릴 반겼다. 내일이 스위스 연방창건기념일이라 오늘 전야제에 친구의 가까운 친구들이 음식을 한 가지씩 해갖고 모이는 자리여서 참으로 푸짐한 개천절 만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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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을 중심으로 친구부부가 이룩한 지역공동체의 건국일 전야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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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중심으로 따스한 교민공동체가 이루어져 있음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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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독일어를 못하는 걸 배려하여 친구가 이탈리아말 하는 친구도 여러 명 초대했다. 30명 가까운 사람이 모였으나 부산스럽지 않고 각자 흥미로운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모른다. 10시가 되자 시청에서 마련한 화려한 불꽃놀이가 라인폭포 위로 40여분간 펼쳐져 가슴을 설레게 했다. 친구집이 높은 곳에 위치해서 바로 눈 앞에서 터지는 불꽃놀이가 더욱 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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