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730일 일요일, 맑음


엊저녁 산보에서 돌아오는 길에 왼뺨을 톡톡 두드리는 노크소리. 하늘에서 해님의 갈 길을 가로막고 한참이나 뜸을 드리던 구름이 몸이 무거워지자 몸을 푸나 보다. 지리산에서 내리던 국지성 소나기를 생각하고 우리는 서둘러 비 피할 곳을 찾는데 노천에서 부자가 탁구를 치면서도, 그 광경을 벤취에서 응원하는 엄마도 빗살에 꿈쩍도 않는다. 우리는 비라면 산성비여서 머리칼이 빠진다느니 하며 법석을 떠는데 축구장에서 웃통 벗고 뛰는 젊은이들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게 둔한건지 길들어선지 자연친화적인지 나라마다 태도가 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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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독립기념일인지 온 제네바가 축제준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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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폴란드 바르샤바 공항에 내려 소위 EU로 들어서는 관문을 통과하는데 우리 앞에 서 있던 아랍인 부부는 유난히 쫄아 있었다. 공산권이던 국가들은 공공서비스가 대체적으로 느릿느릿 하지만 입국심사관이 도장 하나 찍는데 10분씩은 걸리는 듯했다. 시간 내에 환승을 못할까 신경이 곤두선 우리나라 승객들만 구시렁거리고 다른 여객들은 말없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사관이 아랍인 부부를 다그치다 못해 아예 사무실로 데려가 버리자 우리 줄은 망했다싶었다. 하지만 심사관이 혼자 돌아와서는 한국여권에는 무조건 도장을 팡팡 찍어 내보냈다. 스탬프 찍어주는 속도가 나라의 국력에 비례하나? 아까 끌려간 부부가 걱정되어 옆을 지나가는 폴란드 스튜어디스에게 물어보았더니 바로 그날 오전에 터키에서 테러가 일어나 테러범이 탈출했나 싶어 그쪽 사람들 검색이 강화되었을 뿐이란다.


전혀 테러리스트 같지 않은 양순한 젊은 부부였고, 태어나고 싶어서 아랍 땅에 난 것도 아니니 일상적으로 그런 취급을 받는 일은 정말 억울하고 속상하겠다. 명색이 새천년대에 들어온 최근 20여년간 이스라엘 한 나라를 살리려고 아랍세계 전부를 침략전쟁으로 쑥밭으로 만드는 미국과 유럽연합! 수백만의 아랍인 장정을 죽이고 수백만의 아랍인 과부를 만들고 그 두세 배의 아랍인 고아를 만들어내는 이 세상에 아브라함의 하느님이란 대체 어떤 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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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는 말씀이 있었는데도, 늘 조급한 게 여자여서, 더구나 돌계집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우리가 던 여자라서 약속의 실현을 기다리지 못하고, 사라는 몸종 하갈을 남편 침소로 밀어 넣어 아들을 얻고 자기 자식으로 삼아 이스마엘을 얼마간 제 새끼처럼 거두기도 했다. 그러다 정작 자기 몸에서 이사악이 태어나자 이스마엘도 하갈도 눈엣가시가 되어 기어이 광야로 내쫓는다. 아랍인들이 이스마엘의 후손이라면, 2000년을 두고 팔레스티나에 살던 아랍인들을 유럽과 U.N.이 내쫓고 이스라엘 국가를 다시 세워주다니! 단지 예수님이 그 혈통을 타고나셨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믿어야 할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그런 분이신가?


오늘도 주일이어서 마을 성당 11시 미사에 가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성경독서와 강론을 듣고 있노라니 억울한 팔레스타인인들과 아랍인들 때문에 원망과 분노가 자꾸만 부글거렸다. 물론 못된 짓은 인간들이 저지르고 원망은 하느님이 들으시느라 하느님도 좀 억울하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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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미사 후 갓난아기의 세례가 있어 마음이 좀 누그려졌다, 어린 생명은 어디서든 환영을 받아야 하니까. 우리네와 좀 다른 건 여자아이인데도 대부대모가 다 있다. 그래서 유럽엔 대부와 대녀, 대모와 대자 사이에 결혼을 못한다는 혼인장애’ 사유까지 있다는 보스코의 설명. 우리처럼 여자는 대모만, 남자는 대부만 세우는 게 편할 것 같다.


윤명선언니가 스위스 정린씨 집에 다니러 왔다. 서울에서는 만나기 힘든 사람도 외국에 나가면 더 쉽게 만날 수 있다. 사람 숫자가 적다 보니 만나야 할 사람을 알아보기가 더 쉬워서일까? 이일청박사 집 가까이 20km 가까운 거리를 U.N.에서 일하는 정린씨가 차로 와서 우리를 데려가고 데려다 주고 해서 정말 고마웠다


명선 언니는 함께 있으면 재미있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품이 변함없. 서너 시간밖에 함께 있을 수가 없어 헤어지며 서울에서 만나자고 했다. 보고 싶은 사람들은 어디에서든 만나게 마련. 빗줄기가 촉촉이 젖어드는 밤길에 인연이라는 사슬이 참 고맙고, 우리 큰아들이 이곳 한인사회에서도 사랑받는 존재임을 실감케 해줘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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