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728일 금요일, 맑음


이곳에서도 보스코가 하는 일은 여전히 글 쓰는 일이다. 나라고 달라질 게 없다. 그래도 먼 길을 왔는데 오늘은 시내를 둘러보고 박물관 하나라도 가보자고 둘이서 나섰다. 식당에 앉아 토속음식을 먹어볼 것도 없고, 전 세계에서 생활비가 제일 비싸다는 곳이므로 빵기도 식당을 가려면 프랑스 땅으로 우리를 안내했었다. 보스코가 공직에 있을 때 맛있는 음식은 웬만큼 맛본 터라 뭘 먹어보고 싶은 호기심도 없고 뭔가가 특히 맛있을 나이도 아니다


"여보, 샌드위치나 싸갈까?" 다른 때 같으면 식당에서 포도주도 곁들여 폼 나게 먹자고 할 텐데 순순히 그러자고 하니까 과일과 간식 물을 챙기면서도 내가 괜히 미안하다. “그래, 커피 한잔은 사주지 뭐.”


시내로 나가는 전차를 타려니까 문제가 표사는 일이다. 2프랑짜리를 사야할지 3프랑을 내야 할지도 모르겠고, 신용카드로 결제를 하려니까 기계들이 고장이란다. 다른 해에 여길 오면 아들 뒤만 졸졸 따라다녔는데 그러다보니 정작 두 노친네가 스스로 하려니까 여간 까다롭지 않다. 기가 막힌 건 5프랑을 넣으니 잔돈 2프랑을 슬쩍한다. (영수증 지참하고 중앙역에 와서 거슬러 가란다나?) 에이, 이래서 외국에 나가야 애국자가 되고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라는 걸 알게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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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는 며늘아기 지선이랑 걸어갔는데 오늘은 버스표를 사는 대장정 뒤에 제네바 종교개혁의 기념비가 서 있는 바티온 공원엘 갔다. 칼뱅, 파렐, 베자, 녹스 4명의 종교개혁가가 거창하게 서있고 벽에는 "어둠이 지나고 빛이"(POST TENEBRAS LUX)라는 제네바 종교개혁의 라틴어 표어가 더 거창하게 새겨져 있다. 개혁가들과 개신교도들은 고중세 그리스도교(자기네 뿌리)를 암흑으로 보는데, 교회사를 읽어보면 고중세나 근현대나 신교나 구교나 실제로 모두 어둡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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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공원에서 아가를 데리고 노는 젊은 엄마의 모습은 성모마리아의 모습 그대로다. 개신교가 가톡릭을 마리아교라고 욕하면서 종교의 모성도 함께 내다버린 사실은 더러운 물을 버린다고 아기까지 버린 꼴이다. 그 종교개혁가들을 보고서도 보스코는 성당(종교가 신구교 절반씩이어선지 반드시 로마가톨릭교회라고 새겨져 있다)이 보이면 들려 잠시라도 기도를 올렸다. 아마 작은아들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맘이려니.... 두 번 째 들어간 성당엔 한 아주머니의 장례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고인의 안식도 빌고 내 다리 통증도 함께 가져가 달라는 부탁도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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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만 호수가 보고 싶어 걷고 또 걸었다. 멀리 제트 분수가 보이니 반갑다. 우리가 처음 제네바를 찾아 왔을 때(1997)는 빵기랑 셋이었고, 그 담엔 며느리 지선이랑 넷이서, 그 다음에는 시아가 아장아장 걸으면서 백조한테 먹이 주는 걸 보며 즐거워했는데 재작년에는 시우랑 여섯이서 물가를 거닐었다. 어느 새(2017) 레만호수가로 우리 식구가 3, 4, 5, 6으로 늘어났다(오늘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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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 여기저기서 싸온 빵을 먹는 관광객들이 던져 주는 빵부스러기를 구걸하는 백조는 몰락한 백작가문의 귀부인처럼 초라하여 요즘 우리네 503번 여죄수를 연상시키고, 곁에서 함께 구걸하는 자그마한 오리들은 청와대에서 세도 당당하다 푸른 죄수복장을 한 내시들을 떠오르게 한다. 어제 빵기네집 부근으로 흐르는 아르브강은 회색으로 바닥이 안보였는데 레만호의 검푸른 물은 물고기들이 떼지어 다니는 모습까지 다 들여다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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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맞춰 인형극을 하는 집시 여인, 거리의 악사들, 커다란 비누거품기로 하늘 가득 비눗방울을 날리는 아랍인,  "호떡집에 불났냐?"는 말을 듣는 중국인들의 가족사진찍기도 보기에 흐뭇했다. 이번에 유럽 와서 발견한 놀라운 사실은, 젊은 부부들이 애를 서넛씩 낳아서 잘 키우고 있다는 거다. 80년대만 해도 프랑스에서는 지금 우리나라 여자들처럼 애를 안 나서 큰일이라고 언론이 떠들썩했는데... 우리도 20년쯤 지나면 지금의 유럽여인들처럼 애를 쑥쑥 낳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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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를 타고 집에 와서 두 다리 펴고 앉으니 세상에 제일 편하다, 구경도 고생인데 아마 집이 제일 편하다는 걸 새삼 깨달으러 여행을 하고 구경을 다니는 게 아닐까? 그래도 내일이면 뭔가를 찾아서 또 집을 나가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