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727일 목요일 맑음 


제네바에 도착한지 벌써 일주일. 며칠간 비와 천둥이 오락가락 했는데 오늘은 날씨가 아주 맑다. 낯 최고 기온이 27도 최저 기온은 17. 피서객으로 살만 하지만 이곳도 열흘 전에는 낮에 36도까지 갔다니 믿기질 않는다.


빵기 내외는 어제 우리와 리옹에 다녀와서도 자정이 넘도록 가방을 싸서 오늘은 함부르크로 떠났다. 열흘이 넘는 여행일정이니 가방 4개가 빵빵했다. 그 정신에도 휴가 중이지만 사무실 일은 일대로 처리하고 있어 집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바빴다.


빵기네지 테라스에서 건너다본 숲속에는 '마녀의 집'(?)이 한 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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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 시우도 부모를 돕는다는데 힘과 지력이 딸리는 시우가 형을 성가시게 하는 모양이다. 그때마다 빵기의 소리가 커진다. "시우야! 너한테 너 같은 동생이 있다면 억울하지 않겠니? 늘 도와주는데도 동생한테 괴롭힘을 당하면? , 형아한테 뭐라고 해야지?" 연삽한 시우가 즉시 어조를 바꿔 "형아, 미안해." 아우한테 일장 연설을 하려던 형아도 짤막한 결론을 내린다. "시우야! 거짓말 하면 그때부터 싸움이 시작되는 거야."


아아, 어린애의 저 의미심장한 말을 제대로 알아듣는 어른이 몇이나 될까? 우리 사회 전반에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거짓말! 돈과 권력만을 추구하는 자들은 정치가든 교수든 종교인이든 서슴없이 거짓말을 하고, 젊은이들은 돈 얼마가 생긴다면 서슴없이 거짓말을 하겠다!’는 대한민국 사회! 과연 사회지도층과 보수언론이 진실을 말하고 국민이 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세상을 우리가 단 한번이라도 볼 수 있을까? 오늘 블랙리스트로 선고받은 범죄인들에게서도 진실을 듣고 사죄를 받을 날이 올까?


12시에 제네바 비행장에 아들네를 내 차로 실어다 주었다. 마음이 안 놓이는지 빵기는 집안과 계단, 지하실과 공동차고를 여닫는 동작 하나하나를 어미에게 일일이 실습시켰다. 인정 많은 시우까지도 "할머니, 할 수 있겠어요?" 라고 거듭 물어오니 지리산에서 날고 기는 이 할미가 완전 무능아가 된 기분. "시우야, 고마워. 모르면 카톡으로 너한테 물어볼게, ?" 그제야 작은 손주가 안심이라는 듯 고개를 끄떡이며 자기 가방을 끌고 공항 안으로 사라진다. 내일부터는 며느리네 친정집 열다섯 식구(사돈 내외, 큰아들 내외, 작은아들 내외, 딸네 부부, 그리고 손주 일곱)의 여행이 시작된다.


"함무이, 원숭이는 이렇게 하는 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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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다 부치고 카톡을 보낸 아범. "데려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항까지. 아들이 제네바 관광도 못해드리고 ㅠ ㅠ " "엄마 아빠 늙지 않게 자립시켜 줘서 오히려 고맙다. 우리 둘이라면 어디라도 갈 수 있으니 염려 말고 재밌는 여행 하거라." "ㅋㅋㅋ 마치 고아가 자길 버린 부모에게  ‘부모님 어려서부터 일찍 저에게 자립심을 고취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대사의 거꾸로 버전같네요."


아들네 집에 돌아와 보스코가 먹고 싶어 했을 된장찌개에 흰밥을 준비했다. 역시 밥 힘으로 산다는 게 외국에 나오면 더욱 절실하다. 며느리가 휴가 간 짬에 집안 청소, 호청까지 포함한 빨래를 해치웠다. 테라스 화분에 시든 꽃들을 뽑아버리고 새 단장을 하고 싶은데 꽃 시장 있는 데를 아직 모르겠다. 불어를 도통 모르니 농아들이 얼마나 답답한 삶을 사는지 체험하는 중이다. 엊그제 뉴필름대표 한미미씨 얘기: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김기덕 감독이 이태리말은커녕 영어 한 마디 못해 몽땅 우리말만 하면서도 의사소통을 다하고 남는다더라니까 나도 프랑스어 천지에서 쫄지 않기로 맘먹었다.


애들이 떠난 후 집안은 적막하다. 보스코가 손주들 생각이 났는지 이태 전 꼬마들과 함께 거닐었던 아르브강가로 산보를 나가자 한다. 시아가 물수제비를 뜨고 시우는 아장아장 자갈을 갖고 놀던 강가는 요즘 온 큰비로 물이 흘러넘친다. 회색의 세찬 물굽이를 바라보며 이유 모를 슬픔이 강물처럼 굽이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게에 들러 손발을 흔들어 시우 키만한 바게트를 사서 메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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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 전(2015.6.21) 두 손주와 : (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283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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