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726일 수요일, 맑음


그렇지 않아도 파란 하늘이 너무 검푸르러 바늘끝이라도 대면 파아란 물이 마구 쏟아져 내릴 듯하다. 침대에서 내려와 가만히 발을 디뎌본다. 거의 안 아프다. 인대가 늘어난 것 같아 선내과 선생님이 지어주신, 하루에 두번 먹으라는 약을 밤까지 5시간 간격으로 무려 네번 먹고, 손가락에는 수지침을 놓고, 다리에는 파스를 붙여 모든 방법을 동원한 참이다, 온가족 관광대열에서 낙오되지 않으려고.


노보텔의 아침과 푸짐함 아침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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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야 아프면 혼자서 그러려니 하고 시간 가기만 기다렸지만, 여기서는 애들 성화에 고맙기도 하고 성가시기도 하다. 살다 보면 어디서나 언제라도 다치기도 하고 부서지기도 하는데, 정말 더는 어쩔 수 없게 되면야 이승의 짐을 다 부리고 때맞춰 주님 부르시는 대로 아름다운 영원한 나라로 가면 된다. 이제는 어떤 일에 너무 기뻐할 일도 아니고 반대로 너무 슬퍼할 일도 아니다.


두 꼬마가 노는 소리가 요란하다. 심술은 작은놈 시우가 더 심해 대부분 지청구도 걔가 듣는다. 어멈과 아범의 입에 시우야!’가 올라 있다. 오늘 아침에도 서로 목욕을 안 하겠다고 다투기에 가위바위보로 결정하랬더니 시우가 지고 나선 이긴 사람이 먼저 하는 거야라고 우긴다. ‘뒤로 돌아서서 가위바위보를 삼세번 하는데 반칙한 사람은 즉시 목욕을 먼저 한다!’ 라고 세칙을 마련했다. 시우가 돌아서서 형을 보았고, 자기가 낸 가위를 주먹으로 바꾸는 더블 반칙을 해서 먼저 목욕을 하게 했더니만 욕탕에 들어가서는 다시 떼를 쓴다.


지금까지 혼자서 멀쩡하게 해오던 목욕을 혼자서는 못하겠고 형이 도와주면 하겠다.” “그럼 형아가 먼저 하라했더니만 그럼 나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로 바뀐다. 그밖에도 떼와 억지가 숱한데 그래도 어른들은 그 떼쟁이를 미워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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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옹 여행 둘째날. 리옹 박물관을 보기로 했다. 시청 정문 오른쪽에 위치한 리옹 미술관에는 입구에서부터 페루지노의 그리스도의 승천이 커다랗고 화려하게 방문객을 맞아준다. 이탈리아에 살적에 손님만 오면 바티칸 박물관으로 모셔갔기에 유명한 이 작가의 그림들이 낯익어선지 가까운 이웃이라도 만난 듯 반가웠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두 손주의 장난질에 그림을 보는지 손주를 보는지 모르는 미술 감상도 나쁘지는 않다. 어떤 엄마는 애들 셋한테 종이와 연필을 쥐어주고서 자기는 곁에서 책을 읽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어려서부터 박물관엘 다니며 예술세계와 얼굴을 익힌 아이라면 다음에 무엇이 될지 짐작이 간다. 세잔느 고호 고갱 같은 인상파와 로댕과 피카소 같은 현대작가의 작품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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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너 시간 작품을 감상하고서 가까운 식당에서 리옹 특유의 음식을 맛보기로 했다. 오늘은 문정주쌤이 이 식구들에게 한 끼 대접하라고 준 돈으로 양껏 먹었다. 기름과 내장을 다져넣은 순대, 머릿고기 누른 햄, 랜티께 콩과 간을 볶은 요리 등, 가난한 시골에서 서민들이 영양보충을 하던 음식임이 한눈에 보인다. 소스도 버터 생크림 우유로 덖은 것들이어서 보스코의 튀어난 배를 보자면 성인병 걸리기 딱 좋을 음식 같아, 1년에 한번만 먹으면 족하겠다. 잘 삭힌 홍어를 묵은지에 돼지고기 삼겹살과 함께 싸먹는 '삼합'을 앞에 놓은 서양사람의 심경이 이처럼 난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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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후 무거운 음식 소화도 시킬 겸 구시가로 걸어가서 인형극박물관을 둘러보고 기뇰인형극도 보았다. 소란한 프랑스어로 어린이들과 주고받는 마당극이어서 생기가 있었다. 말을 못 알아들어 우리야 면벽참선 하듯 답답했지만 두 손주가 아범과 더불어 별별 물음에도 큰 소리로 대꾸하며 깔깔거리는 소리가 내 귀엔 연극 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여섯달째 육아휴직이라는 한 가족과 인형극을 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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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의 아들네와 함께한 여행이어서 두고두고 기억날 게다. 6시 넘어 리옹을 출발해서 제네바로 돌아와 밤 1시가 넘은 이 시각까지도 내일 처갓집식구 전부와 여행을떠난다고 짐싸느라 고생하는 아들 내외가 너무 피곤할까 걱정하면서 나는 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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