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721, 맑음


530분에 알람이 울렸다. 7시에는 공항으로 나가야 한다고 보스코가 작동해 놓았나 보다. 일어나 씻고, 냉장고에 준비해 놓은 음식을 마저 챙겨 가방을 싸고, 다시 저울에 올려 무게를 일일이 확인했다. 제발 무게 초과해서 터무니없는 요금 내지 말라고 빵고가 신신당부하여 늙으면 아들 말 들어야 한다는 선조들의 조언에 따랐다.


7시에 처음으로 카카오 택시를 부르는데 안 된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으니 목적지를 입력하란다. 문명의 혜택을 받는데도 지속적인 공부가 필요하다. 소통할 아들들이 멀리 있으니 살아남느라 무던히 노력하여 헐레벌떡 쫓아가는 셈. 나보다 훨씬 똑똑한 보스코가 실생활에서 내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까닭은 늘 기댈 언덕이 있다는 배짱이다. 말하자면 어른이나 아이나 홀로 서기를 시켜야 단단해진다.


인천공항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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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산터미널에서 730공항버스를 타고 한 시간이면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빵기가 자리까지 예약을 해놓아 짧은 줄에 체킹을 섰는데 담당 아가씨의 말에 아연했다. 빵기 말이 큰 가방은 한 사람에 23kg46kg, 기내 핸들링가방은 12kg씩이라 해서 이불을 싼 가방까지 3개에 46kg을 맞췄는데, 가방은 2개여야 하고 1개 더 보내는데 17만원이란다. 기내 가방도 8kg씩이란다. 비상사태 발생!


항공사 아가씨가 앞에 지키고 서 있기에 공항과 가장 가까운 이엘리에게 전화하여 공항으로 나와서 가방 한 개를 가져가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한 개를 포기하면 보내는 빈 무게가 너무 아깝다 싶어 중인환시리(衆人環視裡)에 큰 가방들을 열고 이불과 짐을 그 안에 쑤셔넣을만큼 쑤셔넣었다. 한두 가지는 못 보냈지만 별로 억울하지는 않다. 기내 가방에서 빼낸 짐은 이엘리에게 택배로 보내기로 한진택배로 가면서, 기내 가방 짐들은 보스코가 여름내 글을 쓰거나 번역할 책들이어서 항공사 아가씨 안 보는 새에 다시 가방에 넣을 수 밖에.


택배로 부칠 짐은 김과 라면이 전부. 공항이어선지 5,000원어치도 안 될 물건의 택배비가 17,000! "엣다, 김과 라면은 여러분 선물!" 하며 택배사무실 총각들에게 줘버리고 가쁜하게 돌아섰다. 미루 얘기로도 저가항공은 늘 이래저래 사람을 당황케 한단다. 얼마 전 일본에서 온 분이 저가항공으로 왕복 40,000원의 항공표를 구입했다고 좋아했는데, 한국에서 강아지를 데려가는 비행 가격으로 무려 140,000원이나 냈단다. ‘인권(人權)’은 대폭 할인되지만 견권(犬權)’이 확실한 게 저가항공인가보다.


항공편은 폴란드 국적기(LOT)여서 바르샤바를 거쳐서 제네바로 가는 노선. ‘제주항공에서 오가는 크기의 항공기였다. 그 얘길 듣고 어제 만난 모니카(딸들 보러 저가항공을 많이 이용할 게다) 말이 저가항공기는 트랩을 자주 오르내리고 기체가 흔들려 멀미는 좀 하겠지만, 저가라고 해서 비행기가 추락하지는 않는다면서 나더러 염려말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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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대작전'을 펼치고도 행복하기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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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열린 천체물리학회에 참석하고 돌아온다는 폴란드인 표트르와 얘기를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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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보스코의 학위를 마치고 귀국하던 길! 항공료를 이탈리아 지인에게 겨우 빌려서 방글라데시 에어라인을 탔다. 다카를 비롯 무려 네번을 갈아 탔는데 그때마다 네 식구가 짐보따리를 들고, 지고, 이고서 트랩을 오르내리며 방글라데시 서민들의 생활고를 그대로 연기하였다. 그런데 한 가지 고맙던 일은 이중 예약으로 나와 빵고는 자리가 없어 다카까지 비지너스석을 배당받은 일이고, 한 가지 챙피한 일은 김포공항에서 보따리 검색을 받는데 그토록 고생하고 끌고온 보따리 한 개가 아침에 버렸던 커다란 쓰레기 봉지였던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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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아무리 흔들려도 문빠의 '운명'을 읽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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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샤바까지는 정상으로 왔지만 제네바행 LOT는 무슨 일인지 출발부터 한 시간을 연발했고, 제네바 가까이 얼마나 악천우가 심한지 비행기 아닌 롤러코스트 타는 기분을 내주고, 제네바 공항에서는 공항측이 30분이나 게이트를 안 열어주었다! 설상가상 빵기의 고물차가 망가져 큰아들은 택시를 타고 마중나왔다. 우버택시를 불러 짐을 싣고 도착하자 아파트 6층 창문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부르는 맑은 꾀꼬리 소리에 아아, 모든 피곤이 싸악 가셨다아침 7시에 우이동을 나서 제네바 현지 시간 9시까지 21시간의 힘든 여행 끝에 얻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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