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617일 토요일, 맑음


태양은 지글지글 지구를 태우는데 우리 인간은 대책이 없다. 어디서 구름을 쭈욱~ 끌어와 물이 필요한 곳에 양씬 뿌려주고 싶은데, 갈퀴로 끌어올까? 괭이로 긁어올까? 아침부터 유영감님 어제 밤 어두워져 미쳐 못 봐 놓친 논 구석구석에 모를 찔러 넣는다’. 저렇게 심은 한 모에서 쌀이 몇 숟갈 나올까? 저 한 포기마다 100개의 벼꽃이 피고 그 꽃마다 낟알이 맺히기 때문에도 농부는 노는 땅, 빈 터를 못 보아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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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동네 아짐 집에 갔더니 윗동네 아저씨가 심각한 얼굴로 들어섰다. 분위기가 꿀꿀해서 얼른 자리를 피했는데 담 너머로 들리는 소리, "앗따, 내가 이적까지 참았는데 그만좀 하요!" "뭔 말이라요?!" 아줌마도 알면서 지지 않는다. 밭 끄트머리에 있던 돌을 또 한 바퀴 굴렸나보다. 한 바퀴 굴리면 한 30cm 만큼 땅이 넓어지고 이웃한 이남자네 논은 그만큼 줄어든다. ‘그렇게 굴리다 보면 일년에 반 평씩 수년에 걸쳐 댓 평은 넘어 갔다는 이남자의 항의. 물론 한 번도 측량을 해본 일도 없고, 측량하자고 들이밀면 찔리는 편에서 당신네 땅이 어디가요? 다 지적도 보고 사고 파는 긴데?’라고 버틴다.


하지만 아저씨가 몹시 열을 받아 작심하고 찾아온 기세임을 눈치 챈 아줌마는 재빨리 전략을 바꾼다. “아따, 남편 없는 설음이 이런 거로구먼! 남편 없다고 믿보요?" 아줌마는 작년에 혼자되었고 논일 밭일 혼자 하면서 혼자라는 처지가 많이도 서럽고 힘들다는 푸념을 쏟고 과연 새 작전은 먹혔다. 아줌마 눈물 바람에 아저씨는 기세가 꺾여 "누가 뭐라 하요? 그렇다는 거제, 나 참."하면서 일어선다. 아줌마 판정승! 이웃 논으로 한 바퀴 굴러간 돌은 다시는 밭쪽으로 되굴러오지 않을 게다. 문정리식 '땅 따먹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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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가 청소를 해 준다며 걸레로 먼지를 이쪽저쪽으로 밀고 다닌다. 그래도 안하는 것 보다 낫다 싶어 모르는 척 나는 내 할 일을 한다. 음식은 정성이고 그만큼 손도 많이 가는데 먹는 사람은 아마 모를 꺼다.


식당에 여섯 명 손님 테이블 세팅을 다하고 개선장군처럼 사라지던 그가 나이프 포크가 깔끔하게 설거지 되지 않았더라며 타박한다. 갈수록 내 눈이 어두워져 그러니 신경을 쓰라는 잔소리인 셈인데 우리 집에서는 음식한 사람이 설거지를 안 하는 법이니 그럼 누구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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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손님초대를 줄이거나, 집에 온 손님에게 음식을 시켜서 그들도 먹고 우리도 얻어먹는 방법을 쓰거나, 아니면 방곡 사는 아줌마처럼, 서울서 손님 일행이 도착하면, 쌀 한 됫박, 시래기 한 줄, 고추장 된장 한 종지를 디밀어 주고, 그 다음엔 다시는 얼굴을 내밀지 않고 맘 편하게 자기 할일을 하는 경지까지 가거나... (그렇다고 과연 맘이 편할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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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쯤 본당신부님, 장신부님, 그리고 운봉에 이신부님이 차례로 도착하셨다. 공소 회장 토마스는 블루베리 수확일로 바빠서 못 오고, 공소의 감사인 스.선생님이 대표로 오셨다.


신신부님은 독일 유학으로, 장신부님은 미국교포사목으로, 이신부님은 이탈리아 유학으로 다 이탈리아 요리에 맛을 들인 분들이어서 파스타, 채소, 광어와 감자요리를 후식과 더불어 즐겨 잡수면서 환담을 나누었다. 세 시경 손님들이 가고, 보스코의 설거지와 나의 뒷정리가 끝나니 다섯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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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거름에 보스코는 배나무밭에 다시 내려가 방조망 내리는 일을 마저하였다. 보스코의 동료교수였던 최진석교수의 책 제목대로, 탁월한 사유의 시선으로 꿀벌 날개짓에 방해된다고 그물을 걷어올리고 그걸 다시 내리는 보스코 곁으로 물까치들이 장난치듯 날아다닌다. (배가 익어갈 무렵이면 배밭을 작살내는 놈들이 저 물까치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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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40! 광주를 출발한 미루네가 휴천재에 도착했다. 일본여행에 뒤이은 친정아버지 병환 소식에 제주를 다녀오는 길이다. 귀요미라서 며칠 만에 보는데도 오랜만에 만난 듯 반갑다. 라면 한 그릇으로 시장기를 메우면서, 긴 여행에 지칠 만도 한데, 한참이나 그간 얘기로 꽃을 피우다 산청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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