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염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7-03-06 12:53:09
- 수정 2017-03-07 19:09:48
▲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퇴진, 적폐청산 등을 외치는 촛불 든 시민들 ⓒ 최진나를 심판하실 주 그리스도를 증인으로 불러 ···
2013년 3월 13일, 전 세계가 바티칸 시스티나 경당의 굴뚝을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경당 안의 풍경. 추기경들은 차례로 자기 자리에서 투표용지에 교황 후보의 이름을 적은 다음 네 겹으로 접어 손가락에 꼽아들고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 그려진 제단 앞으로 나아갔다. 인류 역사의 종말을 선고 내리려고 오른팔을 높이 쳐든 그리스도의 눈이 선거인을 내려다보는 그림이다.
제단에는 투표참관인 추기경 2명이 서 있었고 제대 위에는 접시로 덮은 투표함이 놓여 있었다. 제대 앞에서 투표자는 모두가 듣게 큰 소리로 선서하였다. “나는 나를 심판하실 주 그리스도를 증인으로 불러 나의 투표가 하느님 대전에서 마땅히 선출되어야 할 분에게 갔음을 선서합니다” 이어서 투표지를 투표함에 넣고 제대에 무릎을 꿇어 인사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사람의 숨은 생각마저 지켜보시는 하느님을 믿는 성직자들이므로 13억 가톨릭 신자들을 통치하는 교황이 가톨릭교회 전체를 두고 취할 모든 언행에 하느님 앞에 함께 책임진다는 신앙의 행위였다. 대통령을 뽑는 한국 가톨릭 신자들에게도 투표는 진지하고 중대한 신앙행위다.
대통령이라는 ‘공동체 인격(共同體人格)’
그리스도인은 믿는다.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 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았듯이,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로마 5,12-20)
신학자들은 ‘공동체 인격’이라는 말을 쓴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가 인류 전체에 원죄로 상속되었고, 나자렛 사람 예수 한 명의 죽음이 역사상 저질러진 모든 죄를 대신 속죄하고 인류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었다는 사실을 풀이하는 신학개념이다. 현대에 한 민족의 지도자, 더구나 국민이 투표로 선출하는 대통령은 그 언행과 처신과 결정이 그 국민이나 국가 전체를 대표하고 또 책임진다, 하느님과 민족사 앞에서!
남북이 대치하고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는 한반도 정세에서 대통령이 북한이나 중국과의 관계를 극도로 악화시켜 핵전쟁이라도 발발한다면, 그 한 사람의 잘못된 외교로 민족 전부가 몰살당할 수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하고 떠나면서 우려한 일이기도 하다. 전쟁의 참상은 우리 부모가 6·25 전쟁에서 이미 뼈저리게 겪었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동안 선장이 승객을 선실에 둔 채 도망가 버리고 대통령이 “청와대는 국가위기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면서 손을 놓아버리면, 국민은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준다는 믿음을 잃어버린다. 소위 ‘최순실 게이트’에서 드러나듯이, 대통령이 모든 국정을 한 여자가 시키는 대로 처분하고, 정부 실책을 비판하는 모든 문화인들을 블랙리스트로 찍어 박해하고, 재벌에게서 수백억 원을 뜯어내 퇴임 후를 대비한 재단을 만든다면, 공권력은 강도와 다름없어진다. 실력이 안 되는 정유라 한 사람을 입학시키려고 대학교 학칙과 교육부 지침과 체육계 규칙을 뜯어고치면 공정한 룰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사라진다. 대통령 한 사람의 잘못을 한국사회 전체가 뒤집어쓰고 국정이 혼란에 빠진다.
내가 찍는 한 표에 내 나라, 내 구원이 달려 있다는 책임감
머지않아 우리 손으로 다시 뽑는 대통령의 모든 정책을 그에게 투표한 유권자도 함께 진다. 예수님의 무죄한 피를 흘리게 할 수 없다는 빌라도 총독에게 유대인들이 외치던 함성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질 것이오” 우리도 어느 후보 이름 밑에 도장을 찍으면서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셈이다. “내가 찍는 사람이 앞으로 저지르는 잘못에 대한 책임은 나와 내 자손들이 함께 지겠습니다”
그 나라의 정치수준은 투표하는 국민의 정치수준만큼 발전한다고 한다. 지난번의 투표결과에 우리는 절망하고 통탄하였다. 그래서 신앙의 눈으로 본다면 나와 내 집안 그리고 한반도의 구원과 멸망이 정말 그날 내가 찍을 한 표에 달려 있을 것 같다. 희망은 우리 손으로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