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

아시아문화』 (2017.3)

18~78면 게재


한국의 해방신학 


 

성염·홍인식

 

일시: 2017210

장소: 경남 함양 휴천면 휴천재休川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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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방신학의 태동

 

홍인식

제 책 해방신학 이야기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해방신학의 출현은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이 당면했던 불의한 가난과 삶의 현장으로부터였습니다. 참혹한 삶과 억압의 현실을 목격한 사제들, 특별히 가톨릭 사제들이 왜 이러한 현실이 발생했는지를 고민하게 된 것이지요. 동시에 그들이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는 질문이 아니라, “이러한 참혹한 현실 속에서 도대체 하나님은 무얼 하고 있는가?”라는 성찰을 한 것에서부터 해방신학이 태동하였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사제들에게서 발견되었던 중요한 것은 이제 해방신학에서 쓰는 단어로 말하면 분노입니다. , 윤리적 분노가 일어났던 것이지요. 이 두 가지 측면에서 해방신학이 태동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성염

가톨릭교회사를 보아야겠지요. 로마제국의 박해가 끝나고 종교자유를 얻은 뒤 국교까지 되면서 중세를 지나오는 내내 가톨릭교회는 기득권 세력이었습니다. 중부 이탈리아 대부분을 장악한 교황령은 일종의 왕국이었고요. 나아가 전 유럽의 군주들을 좌지우지하는, 모든 면에서 기득권 세력으로서 처신했지요.

근대에 들어와서도 그랬습니다. 예를 들어 소설 레미제라블의 등장인물 중 미리엘이라는 주교가 나오지 않습니까? 빅토르 위고의 원작에서는 그 사람에 관한 묘사가 100쪽에 달하면서 소설가가 그리는 이상적인 성직자상이 그려지지요. 그런데도 그 책이 1960년대까지 가톨릭에서 금서禁書였어요.

그러다 1960년대에 2차바티칸공의회가 열립니다. 사실 교황청은 그 회의마저 자유주의·계몽주의와 같은 진보사상을 단죄하려고 초안을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전 세계에서 모인 주교들이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 하고는 기획안을 전부 뒤집어 버립니다. “현대 인류의 기쁨과 슬픔, 희망과 고뇌가 크리스천들 것이다.” 따라서 세계 문제를 우리가 알고 우리가 동참해야 한다면서 가톨릭교회의 쇄신 적응그리스도교의 기조정책으로 정해 버린 것입니다. 2차 바티칸공의회가 반포한 헌장 가운데 사목헌장이 있어요. 그 머리말에 교회가 세계의 현상을 직시하고 세계에 대하여 구원의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지요.

그렇게 1965년에 공의회가 끝나고 3년 후인 1968년에 메데인(Medellín)에서 전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연합회가 열렸습니다. 라틴아메리카의 비참한 정치적 경제적 현실을 성찰한 메데인회의에서는 교회의 사명을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했습니다. “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인식한 관점으로 우리 대륙의 현실을 보자.” 그리고 모든 것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우선을 두자고 결의했지요.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국민들, 특히 빈곤한 사람들이 사회의 억압에서 해방되고 빈곤에서 풀려나는 것이 그리스도교다운 해방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렇게 되니 그 지역 성직자들 전체가 놀랐습니다. 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힘을 받았지요. 그처럼 새로운 사명을 의식한 가톨릭인사들이 삶의 현장에 뛰어들면서 현장을 관찰하고, 또 그 현장을 개혁하려고 투신하고, 그 투신한 결과를 놓고 신학적으로 성찰합니다.

 

홍인식

그렇습니다. 성찰이 나중에 오는 것이지요.

 

성염

신학을 한다면 먼저 철학적인 원리를 설정해 놓고 그 원리에 따라 실천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렇게 되면 실제로는 절대 실천까지 못 가지요. 그런데 라틴아메리카인들은 먼저 실천하고 현장에서 경험하고 경험을 토대로 영성적 성찰을 했습니다. 이것이 해방신학이지요.

 

홍인식

성 선생님 말씀대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그 변화의 주된 계기가 당시 제2차 바티칸공의회 기간 중 그리고 폐막한 직후에 라틴아메리카 주교들의 모임이 이루어집니다. 이 모임에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대하여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문제들을 성찰할 것을 요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공의회 폐막 이후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의 실천적인 과제에 대한 의견들을 개진했지요. 재작년에 그 모임의 50주년 기념식이 있었습니다. 이렇듯 라틴아메리카 주교들이 모여서도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내놓았는데 이것도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성염

방향이 전혀 달랐지요.

 

홍인식

, 바뀌어졌습니다.

 

성염

크리스천들은 자칫하면 영혼을 구한다는 표현을 씁니다. ‘구령救靈이지요. 영혼을 구하기로 하면, 굶주리고 고문당하고 죽어가는 육체는 영혼 구원에 번잡한 원수라는 겁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그들에게는 영혼 구원의 원수예요. 또 하나 마귀라는 것이 있습니다. 눈밖에 난 모든 것을 악마라고 취급해 버립니다. 이데올로기적 단죄지요. 이런 것을 트리덴틴공의회 때부터 신도들에게 가르치고 주입했습니다. 트리덴틴 교리서에 나옵니다. “영혼의 원수는 무엇이뇨?”, “영혼의 원수는 육신, 세속, 마귀니라.” 라틴아메리카의 비참한 현실을 두고 이런 타령이나 하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말도 안 된다고 각성한 것이지요.

 

홍인식

가톨릭교회에 대해서 이야기되는 것들은 중남미의 기득권과 함께 연관되었습니다. 신앙을 지켜 나가는 것이 기득권을 지키는 것과 동일시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득권을 파괴하려고 거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악마이고, 그것은 세상 밖의 일이라는 생각들이 많았지요.

참 놀라운 것은 라틴아메리카 가톨릭교회도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지주입니다. 가장 많은 학교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라틴아메리카에서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이라 하면 무조건 가톨릭 이름이 들어가면 최고의 학교입니다. 또 그러한 학교 출신 사람들이 가톨릭교회와 연관되어 라틴아메리카의 모든 상층부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톨릭교회가 상층부에 대한 견제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더욱 놀라운 것이지요. 거기에 일단一團의 주교들이 기득권을 포기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섰다는 것은 정말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성염

기득권 세력과 엄청난 충돌이 예상되었지요.

 

홍인식

그럼요.

 

성염

그 많은 성직자들, 가톨릭 인사들, 수도자들이 가톨릭 신자인 정부기관과 군경의 손에 피살당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홍인식

기득권과의 상충, 그만큼 문제가 너무 심각했던 것입니다.

 

2. 해방신학의 내용

 

홍인식

제가 볼 때는 해방신학이 태동하였음에도 아이러니하게 교회 내의 신학을 주도하지 못했습니다. 해방신학이 태동한 남미에서도 그러했고, 한국에서도 해방신학을 터부시했습니다. 해방신학은 전통 교리에서 벗어나 교회를 파괴하는 신학이라고 해서 대부분의 교회에서 거부하는 경향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해방신학이 교회 밖에서 해방운동, 민주주의운동, 정의를 위한 싸움을 하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신학적, 정신적인 근거를 제공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왜 교회 내에서는 거부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말씀드렸던 역사적인 배경 속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 기득권을 부정하고 뒤집으려 하는 해방신학에 대한 기득권자들의 거부라고 봅니다.

해방신학의 가장 주된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세상을 판단하고 신앙을 판단하고 사회를 판단하는 여러 가지 시각이 있는데, 그 시각을 예수님처럼 밑의 사람으로서 보자, 가난한 사람의 입장에서 한번 보자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약한 자들의 승리를 꿈꿨던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류 세력이 아니라, 영웅들이 아니라, 정말 힘 없고 가난한 사람들, 약한 자들이 역사 속에서 승리하는 그날이 있을 것이라는 꿈을 꾸었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예수의 본모습을 발견한 사람들이 가난한 자들의 승리랄까요? 그러한 것을 꿈꾸며 해방신학을 주창하게 된 것이지요. 약한 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약한 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세상을 고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시각의 변화가 해방신학의 가장 귀한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저는 봅니다.

 

성염

1971년에 출판된 구티에레즈의 해방신학을 바로 1977년에 번역했어요. 엄혹했던 유신시대였지요. 1970년대에 군부독재에 저항하면서 우리나라 민주인사들이 이념적으로 의지할 데가 참 궁했습니다. 마르크스 레닌 현실사회주의로 직행해 버리면 일반 민중이 받아들이지 않고, 정권이 철저하게 탄압을 할 핑계를 주지요. 그런 고민을 저도 안고 있었는데 어느 날, 왜관 분도출판사 사장 임세바스찬 신부(독일인)라는 분이 영어판으로 된 책을 한 권 가지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이 책이 정말 중요하다, 우리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하다, 좀 읽어 보고 판단을 하라. 만약 당신이 번역해 주면 우리가 책을 내겠다.”

그래서 읽어 보았는데 쫙 빨려들어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게 우리가 가야 할 길이구나!” 제가 크리스천이니까, 크리스천의 입장에서도 우리 투쟁과 행동을 뿌리박을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바로 이 신학이 제공해 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해방신학을 번역했지요. 아주 짧은 시일에! 당시 출판사 편집장이 미국에 대한 비판 같은 부분은 일부를 좀 빼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급적 그냥 실었습니다. 그렇게 이 책이 나오게 되었지요.

먼 훗날 돌이켜 보니 이렇습니다. 민주화에 투신한 사회인사들 가운데 그 책에서 자기 행동 명분을 정리했던 분들은 개신교든, 가톨릭이든 종교인으로 남았습니다. 그런데 그 책을 접하지 않고 종교적 언사로서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한 분들은 마르크시즘으로 직행하였습니다. 그쪽으로 가 버린 크리스천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우리 사회에 끼친 이 책의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가 선포한 구원을 어떻게 알아듣느냐는 건데, 아까 말씀드린 대로 자칫하면 구령이라고들 해석해요. 영혼은 구하고 세상과 육신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식이지요. 그러니까 입교한 사람들은 구원의 방주를 탄 셈이고 다른 사람들은 다 빠져 죽어도 우리는 안전하다는 관념을 품고 살지요. 이건 아닙니다.

그리스도교가 2000년 동안 잘못 만들어 온 윤리가 청교도 윤리입니다. 어디에도 동티가 나지 않은 것, 깨끗한 것, 신 앞에서 탈 없는, 이것만 하면 됐지 자기들이 타인들에게 저지른 모든 악행, 사회적인 악행은 죄도 아니라는 윤리관념을 키워 왔지요.

해방신학에서는 이런 식의 사고를 뒤엎고 죄에다 사회적 죄라는 개념을 넣었습니다. 사회를, 타인을, 집단을 상대로 저지르는 죄, 또 집단적으로 저지르는 악이 가장 심각한 문제이고, 거기에서 해방되는 것이 급선무라고 보았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의 아들이 굳이 사람이 될 필요도 없지요. 뭐하러 살덩어리가 되어 신성을 더럽힐 필요가 있어요? 그냥 하늘에서 내가 오늘부로 너희를 용서하고 구원했노라!” 하고 방송을 하면 되는데? 이 신학자들은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고 역사의 한 시점으로 들어오신 사건을 중시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자렛 사람이 처음으로 설교를 시작했을 때 누구를 과녁으로 이야기기했는지 유의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갇힌 사람들, 정의를 목말라하는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라 보았어요. 따라서 크리스천들의 사랑 역시 끼리끼리의 친교가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으로 폭을 확 넓힌 사랑, 투쟁과 혁명도 불사하는 사랑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야말로 해방신학의 핵심이지요.

 

홍인식

그러한 면에서 해방신학이 서구신학과의 차이점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서구신학은 철학적인 관념을 출발점으로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 성 선생님께서 이야기하신 것처럼 구령救靈과 같은 관념적인 구원을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지요. 플라톤과 같은 이원론, 소위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고, 그래서 구원은 순수한 영을 가두고 있는 감옥인 육을 떠나서 하나님과 가는 것이라고 하는, 이러한 것들은 저는 철학적인 근거에서 본 신학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해방신학은 철학을 근간으로 하고 있던 당시의 서구신학에서 탈피해서 사회학적인 면에서 신학을 전개했습니다. 이것에 저는 큰 역사적 학문적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사회학적인 면에서 보니 현실이 구원받지 않으면 의미가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구령이라는 관념적인 것에서 실천적인 구원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조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회적인 해방이 배제된 채로는 구원이 온전해질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지요. 이제 거기에서 마르크스와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성염

, 방법론이지요.

 

홍인식

그렇습니다.

 

성염

방법론이 제공되거든요. 그러니까 즉시 보수 기독교, 보수 가톨릭이 공격하고 반박하는 빌미가 되기도 하지요. 왜냐하면 해방신학의 나머지는 다 빼놓고 거기에 마르크스 방법론만 지적하면서 빨갱이라고 욕하는 공격이 들어오게 되었지요.

 

홍인식

사실은 유명한 해방신학자 중에서 순수한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 사제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저도 순천중앙교회에 올 때 홍 목사는 빨갱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해방신학, 마르크스를 했다는 게 이유였지요. 저는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연이라는 말을 쓴다고 해서 불교 신자라고 한다면 황당하지 않겠느냐고요.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마르크스 용어를 쓴다고 해서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겁니다. 또 사회학을 하다 보니 사회를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마르크스의 사회분석론을 능가하는 것이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성염

, 없어요. 그러니까 마르크스를 방법론적으로 채택하면서 여기에 구체적인 해결책이 있다고 본 것이지요. , 그리스도 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사회주의 비판을 방법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홍인식

, 사회학적 방법론을 도입했지요.

 

성염

유익하고 현실적인 학문으로 만들었어요.

해방신학번역에 이어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1979년에 출판했어요. 제 아우 성찬성이 번역을 했는데, 어디서도 간행을 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몸담고 있던 천주교평신도협의회의 홍보분과에서 출판을 감행했지요. 우리 정부는 당시 이 책들의 성격을 몰랐습니다. 그때마다 정보부에 일러준 것이 미국 쪽이라더군요. 이 책이 얼마나 무서운 책인지를 파악하고는 당장 분도출판사에 안기부가 들이닥쳐서 책을 작두로 자르게 했습니다.

프레이리 책이 나오고 역자인 제 아우와 출판인인 제가 남산으로 잡혀갔지요. 추석날 밤에 끌려가 한 달 동안 있다가 10·26 새벽에 나오게 됩니다. 석방 이틀 전에 김재규 씨가 시찰 왔지요. 그때 말투가 좀 이상했고 우리 취조관이 당신들 나갈 것 같소.”라고 했어요. 주교 몇 분이 진정서를 냈습니다. 우리 형제는 빨갱이가 아니고 가톨릭교회 안에서 책을 번역하는 사람들이라고 변호했습니다.

그러니까 정보부도 미 CIA가 그때그때 알려 주니까 알았지, 당초엔 몰랐던 것 같습니다. 레이건 정부 때 산타페문서라는 외교문서가 있었습니다. 레이건 행정부의 외교 근간이지요. 그 문서에서 미국의 제1의 적은 민족주의였습니다. 2의 적이 크리스천들의 사회참여, 그리고 세 번째가 현실사회주의 곧 러시아였어요. 1980년대니 머지않아 러시아는 한 10년 안에 무너진다고 예상하고 있던 때 해방신학이 득세하며 등장하거든요.

여하튼 우리나라의 많은 크리스천들도 적극적으로 해방신학에서 행동 명분을 얻어 도시산업선교, 가톨릭농민회, 가톨릭청년회, 사제단이 활동을 개시했어요. 그분들이 정말로 구티에레즈에게 감사해야 하지요.

 

3. 해방신학의 역사적 연원과 전개 과정

 

홍인식

1492년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발견한 게 아니라 도착을 한 것이지요. 그 정복 과정에서 학살이 일어나고 억압 상황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모든 가톨릭 사람들이 그것에 찬동했느냐, 그건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안토니오 몬테시노(Antonio Montesino)라는 신부가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을 보면서 이것은 종교가 아니라고 했지요. 그리고 성탄절 하루 전날 성탄 미사를 통해서 이렇게 억울한 사람들을 죽이는 너희들이 천국을 갈 수 있겠느냐고 질문합니다. 그 강론을 듣고 있었던 사람이 바로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Bartolomé de Las Casas)라는, 후일 인디오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본래 상인이었는데, 최초로 그곳에서 신부 수업을 받고 라틴아메리카에서 신부로 서품이 되었습니다. 평생 인디오들의 인권을 위해서 투쟁했지요.

그러니까 이러한 역사적 정신들이 가톨릭 내의 양심 세력으로 존재해 왔습니다. 결국에는 신학적으로, 좀 더 조직적으로 맺어진 것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1968년의 메데인까지 왔다고 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그러한 저항정신을 우리의 DNA 속에 심어 놓으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 섭리의 방법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해방신학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제 책에도 그 부분을 자세하게 기록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렇습니다. 가톨릭은 조금 덜하지만, 이번 박근혜 문제에 대해서도 개신교의 내로라하는 이름난 대형교회 목사들이 우리 오천만 민족에서 제일 불쌍한 게 박근혜라는 이야기들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창피합니다. 교회들이 하나님의 역사의 섭리의 방법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 가슴 아프고 부끄럽지요.

 

성염

신학이니까 언제나 그 뿌리는 나자렛 사람 예수로 거슬러 올라가지요. 우리가 복음서를 펴면 나자렛 사람의 첫 발언이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마디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복음을 믿으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왜 그것이 복음곧 기쁜 소식이냐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너희의 것이다.”라는 메시지이기 때문이지요. 그분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겁니다. 유대의 지도자들이 서둘러서 예수를 처형해 버린 것도 그런 메시지 때문이지요.

그러고 나서 제자들이 유대 세계로부터 떨어져 나가고, 그다음에 네로 황제로 시작해서 300년 로마제국의 박해를 받으면서는 나자렛 사람이 했던 근본 메시지, 가난한 사람도 행복한, 하늘나라이야기를 터놓고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로마 시민은 황제 숭배를 해야 하는데, 그를 거절하고 목숨을 내놓고 교회를 믿으니 기득권이 그냥 둘 리 없지요. 남녀가 한데 모여 예배를 보니까 남녀가 혼음한다고 중상하고, 십자가에 달린 주님의 형상을 예배소에 걸어 놓으니  당나귀 대가리를 섬긴다고 지탄하고, 자기들끼리만 성찬식을 나누니까 어린애를 삶아 먹는다는 헛소문도 퍼뜨렸지요.

그런 박해 중에 신앙의 성찰, 곧 신학이 내면으로 돌아갑니다. 하느님 나라 이야기를 꺼낸 나자렛 사람 예수의 정체가 무엇이냐, 그가 과연 누구냐로 집중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 하느님의 영원한 말씀, 하느님의 아들, 삼위일체의 제2위라는 난해한 사변적 성찰로 바뀌어 버리고 그 풍조가 중세와 근대까지 이어져 버립니다.

 

홍인식

, 그렇습니다.

 

성염

메시지는 없어지고 메신저에 대한 신조만 심화됩니다. 세계 종교인들이 항상 따라가는 방식이지요. 석가모니의 가르침보다는 싯다르타 왕자가 영원한 법신이신데 그분께서 마야 부인의 몸에서 육화를 하고 성도를 하고 만인을 구제하고. 하면서 신화 세계로 가 버린 것이지요. 그게 오늘날까지도 그야말로 신학의 주류를 이룹니다. 그러면 그분이 무엇 때문에 사람이 되었는지는 거의 성찰하지 않습니다. 안중에 없어요. 역사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은 역사를 살고 역사를 바꾸기 위함인데, 그러니까 신학적으로 2000년이 거의 정체되어 버린 셈이지요.

하느님이 지상에 와서 인류의 죄를 속죄한다,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간다는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어떤 죄냐 했을 때 사람들이 다 그것도 퓨리탄적으로 마치 음탕한 짓들, 하느님의 거룩함을 깨뜨린 종교적인 터부만 생각했지 이 사회를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는 전혀 관심 밖이었습니다. 마태 25장에 나오는 최후의 심판은 완전히 사회적인 메시지입니다. “너희들의 종교가 무엇인지, 예배는 했는지, 나는 따지지 않겠다, 불쌍하고 가련한 너희 이웃들에게, 이 사회에 너희가 무엇을 했느냐만 심판하겠다는 거예요. 그런데도 신도들은 , ‘착하게살라는 말씀이구나.” 정도로 그쳐 버린 것입니다. 그게 2000년입니다.

가톨릭교회가 모든 사회적 기득권을 상실하고 바티칸으로 숨어들었다가 바티칸시국으로나마, 그것도 무솔리니가 인정해 주었지요. 기득권을 다 뺏겨 버린 다음에 드디어 처음으로 예수님의 메시지를 제대로 알아들었어요. 죄의 관념, 사회적인 죄가 문제고, 그다음 그리스도,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한 분, 따라서 해방자인데, 정말 잘못 가르쳤고 잘못 믿었다고 한 것이지요. 해방신학에서는 해방자 그리스도에 대해서 성찰이 총집중됩니다. 그러면 자기의 행동 명분이 다시 되살아 나옵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마르크스의 제자이지, 예수의 제자냐?”는 식의 지탄을 보수 측에서 받게 되지요.

 

홍인식

성 선생님 말씀에 조금 덧붙이면 해방이나 구원이라고 하는 개념 자체가 구약성경에도 많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해방, 구원이라는 단어가 나타났을 때 상황이 어땠는가 하면 반드시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었습니다. 그걸 구원으로 보았던 것이지요. 그런데 가톨릭이나 개신교나 교회는 그것을 거의 2000년 동안 영화靈化시켰습니다. 억압의 구조를 배제한 채 영의 구원으로만 보고 사회는 상관이 없었지요. 그러니까 사실은 성서적으로나 예수님의 입장에서도 보면은 사회적 구원을 이야기한 것이 해방이고, 글자 그대로 억압으로부터 벗어남을 이야기했던 것인데, 그것을 최근에 와서야 비로소 발견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성염

그리스인들이 옛날부터 그랬습니다. “알면 사랑한다.” 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가 4세기에 아니다, 사랑하면 안다고 뒤집어 놓았어요. 그다음 19세기에 오니 마르크스가 누구와 함께 서 있느냐에 따라서 알게 된다면서 사회학적인 분석이 나왔습니다. 그래도 근본적으로 한 번 뒤집어 놓은 것은 아우구스티누스였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가톨릭교회는 알아듣지 못했지요. 알아듣는 데 1500년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4. 해방자 예수

 

홍인식

말씀드렸지만 저는 예수가 상당히 가난하던 사람 자체였다고 봅니다. 성서에서도 그러한 것들이 나타나는데, 물론 성서를 통해서 역사적 예수를 얼마만큼 발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에는 큰 의문이 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복음서나 바울 서신을 통해서도 역사적 예수의 모습들을 어느 정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굉장히 가난했던 사람으로 보여집니다. 성 선생님, 존 도미니크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은 불경스럽다고 하면서도 문맹자였을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아주 극빈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고도 합니다. 노동의 현장도 경험하신 분이고요. 인력 시장에서 해가 질 때까지 일자리를 찾지 못해 빌빌거리는 경험도 있었던 분입니다.

 

성염

, 말씀하신 부분이 성경에 나오지요.

 

홍인식

땅이 없으니 일용 노동자로 농토 지주한테 고용되어서 씨 뿌리는 일도 했고요. 하여튼 극빈자로서 살아갔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분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는 그러한 것으로부터 벗어나서 인간이 인간됨을 회복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던 것이지요. 그분의 복음은 결국은 벗어남이었습니다. 신학자 게르트 타이센(Gerd Theissen)도 팔레스타인 국민의 95% 정도가 극빈했다고 이야기했지요. 그러한 경제적 억압으로부터의 벗어남, 종교적인 억압, 로마와 바리새인, 당시 유대교 지도자로부터 내려오는 정치적 억압, 사회적, 문화적인 억압으로부터의 벗어남을 하나님으로 보았던 것이지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예수님은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자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해방자로 생각하지 않고 다만 영적인 구원자로만 보기도 합니다. 억압이 있어도 어차피 영이 구원을 받는 것이니 상관 없지요. 그렇게 사회에서 당면하고 있는 실제적인 문제에 대해 외면하게 만들었던 것이 우리 기성 교회들의 문제가 아니었는가 합니다. 정말 예수님은 해방자였습니다.

 

성염

크리스천이라는 이유만으로 처형당하던 로마제국 300년의 박해를 겪으면서 교회의 자세가 그렇게 소극적으로 변했을 것입니다. 그분의 메시지를 그냥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대역죄지요. 그대로 몰살시켰을 테니까요. 많은 사람들은 예수의 어머니부터 해방의 메시지를 품었던 것으로 압니다. 예수의 어머니가 아기를 배고, 자기 사촌 언니 집에 가서 아기 수발을 해 주는 이야기가 성경 루카복음에 나옵니다. 그때 마리아가 시를 한 편 지어서 사촌 언니에게 들려줍니다. 마니피캇(Magnificat)이라고 합니다.

 

홍인식

, 마리아의 찬가이지요.

 

성염

마리아의 노래라고 알려진 마니피캇을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그 당시에 마리아의 뱃속에 든 아기가 누구 자식인 줄도 모르니 약혼자가 이의를 걸면 여자가 맞아 죽는 신세였어요. 그런데 하느님이 권세 있는 자들을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미천한 사람을 끌어올리고, 부자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내고 가난한 사람을 배불리 먹이신다는 이 노래 가사는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훗날 예수는 홀어머니 밑에서 큰 걸로 보이는데, 그 아들이 처음으로 고향에 가서 데뷔 설교를 하는 마당에 이사야서를 펴듭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 묶인 자들에게 해방, 그리고 없는 사람들에게 빛을 준다는 구절을 골라 읽습니다. 그러고서 자기 고향 사람들한테 돌 맞아 죽을 처지가 됩니다. 벼랑에서 떨어뜨려 죽이려고도 했는데 어떻게 겨우 빠져나왔고요.

시골의 순박한 사람들에게마저도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 던진 그 메시지가 너무 충격적이었던 것입니다. “저게 어디에서 굴러먹은 뼈다귄데, 이 동네에서 큰 걸 우리가 뻔히 아는데, 직업이라고는 목수인 주제에 감히 저런 이야기를 하고 다녀? 우리까지 반역죄로 몰살당하게?” 그러니까 그 사람의 첫 설교가 완전히 실패해 버린 이유가 그 혁명적인 해방 선포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죽을 때까지 계속했지요. 그러니 제명에 죽겠습니까? 당연히 십자가에 처형당하는 모습을 보게 되지요.

그 뒤로 그리스도교는 사회의 모든 갈등을 피해서 살아남는 방법을 찾아냅니다. “예수는 주님이시다.” 한마디만 믿으면 된다는 겁니다. ‘주님이라지만 어떤 의미의 주님인지는 생각하지 않고요.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고 신성로마제국이라는 것을 세우면서 그리스도교는 스스로 신성로마제국 창건의 거의 주역으로 행세하지요. 야만족 가운데 제일 센 놈을 로마로 불러다 왕관을 씌우면서 지금부터 네가 로마 황제야. 그러니까 평정을 해!” 하고서는 유럽 사회에 군림해 버렸지 않습니까? 그럼으로써 지금의 문제가 시작된 것이지요. 개인적인 정화와 개인적인 성화에 열중하게 만들었지만 사실 사회문제에 눈감게 유도했습니다. 19세기 마르크스의 사회 비판을 받은 다음에야 겨우 자기 본분을 깨달았다지만 얼마나 늦습니까?

 

홍인식

그래서 제가 보기에는 우리 교회의 논쟁이나 토론 주제가 거의 신은 누구인가? 예수는 누구인가? 예수가 동정녀에게서 탄생한 무흠 잉태라 하는, 그렇다면 마리아는 창세 전부터 그러했는가? 혹은 예수님은 베레 데우스(vere Deus), 베레 호모(vere homo), 즉 참하나님이고 참인간인가? 삼위일체가 무엇인가? 거의 2000년 동안 계속 이러한 주제로만 논쟁해 왔지 않습니까? 교회에서 소수의 선각자들 외에는 도대체 예수는 무얼하러 왔는가에 대한 질문을 많이 삼갔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조금 전 성 선생님께서 이야기하셨던 것처럼 마르크스의 사회분석론을 접하게 되면서 새로운 눈을 뜨게 된 것이지요. 우리들을 위해, 이 사회를 위해, 변혁을 위해 오신 예수를 이해하고 그러한 삶에 대해 묻는 것을 더 중요한 과제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 예수는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을 함으로써 그때부터 바뀌어진 것 같습니다. 이를 따르는 것도 아직 소수이지만요.

 

성염

나자렛 사람에게는 그 어머니가 꿈꾸던 세계가 있었어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태몽에는 하느님의 아들’, ‘다윗의 후손등등 거창했는데 정작 탄생할 때부터 바로 죽음으로 몰리지요. 헤롯으로부터요. 생일이 비슷한 아기는 다 죽였으니까요. 그러면서도 옛날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해방되었듯이 메시아가 오면 그 백성이, 아니 전 인류가 해방되리라는 가르침을 어머니에게서 들었던 거예요. 해방이 오면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착상했단 말입니다. 그리고 어머니한테 배운대로 고향의 귀향 연설 자리에서, 그러니까 첫 설교에서 한번 발설해 보았단 말입니다. 완전히 실패였지요.

예수님은 구약사상, 특히 예언서들을 많이 인용합니다. 성서를 남기고 죽은 사람만 해도 17, 18명 되는데, 그 많은 예언자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말이 사회 비판이에요. 사회 비판을 하기 때문에 제명에 죽은 예언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당시 집권한 국왕들, 야훼 하느님을 믿는 국왕들 손에 다 죽습니다. 엄청난 체제 도전이니까요.

이렇게 하느님 나라의 메시지가 구약부터 흐르고 있는데, 사람들은 부담스럽고 속 시끄러우니 가급적 옆으로 치우고 숨기지요. 하느님께 제사를 올려서, 하느님이 나를 깨끗하게 해 주시고 복 주시고 잘살게 해 주십사 하는 쪽으로 달라집니다. 예언 전통이 사라지고 제사 올리는 제관계 전통이 주류로 자리 잡지요.

그러다 메시아 곧 그리스도가 왔지만, 그 뒤 2000년도 성직자들이 하느님께 미사니 예배니 하면서, 어떤 제를 올려서 하느님의 눈에 드느냐는 제관 종교를 만들었습니다. 예언자들이 했던 그 강렬한 사회 비판과 사회적인 책무는 모조리 짓누르고 숨기고, 예언서는 성경 독서에서나 한번씩 읽어 보는 문학서로 바뀌어 버렸어요. 그러니 인간은 아예 안중에 없는 것이지요. 육체 속에 영혼이 잘못 귀양왔다는 플라톤식 사고, 하느님이 만든 것 같기는 한데 육체는 어떻게 돼든 영혼만 건져내서 헹궈내는 종교로 고착되고 말았어요. 아시겠지만 유대신앙, 구약성경에는 본래 영혼불멸사상이 없었습니다.

 

홍인식

, 없었지요.

 

성염

하느님이 죽은 사람들을 언젠가 되살려 내신다는 믿음은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믿었습니다. 그런데 플라톤 사상이 들어오니 죽이 맞은 겁니다. 사후에 안 죽는 영혼만 어디 가 있다가 나자렛 사람이 말한 대로, 마지막 나팔소리가 들리면 재생해서 나타난다는 믿음으로 둔갑합니다. 그럼 그 공백기에 영혼은 뭘 하지요? 아무 답이 없어요. 종교는 자칫 이런 식으로 가지요.

근본적으로 모든 종교는 신과 통합니다. 상하로 통하는 수직선! 신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하지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수평선은 별로 중요치 않아요. 그런데 나자렛 사람은 처음부터 그게 아니라 네가 타인에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즉 수평선이 수직선을 결정하지 수직선만 잘 통하면 수평선은 저절로 통하는 게 아니다.”라고 가르칩니다. 종교의 근간을 뒤집어 놓았어요. 때문에 당대의 제사장들, 바리사이파(가장 경건한 종교인들), 율법학자(가장 유식한 종교인들)이 합작하여 예수를 처형해 버립니다. 기득권이 가지고 있는 종교신앙을 뿌리째 뒤집는 사람은 어느 시대, 어느 종교에서도 살아남지 못해요. 나자렛 사람이 설정한 종교도식을 2000년이 지나서야 크리스천들이 차츰 깨닫기 시작하다니, 사회학자들과 계몽주의자들과 혁명가들이 다 깨닫고 실천한 다음에야, 그것도 한 300늦게야 알아듣다니 참 한심스럽지요.

 

홍인식

어떤 연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물론 가난해서이기도 하겠지마는, 예수님의 삶을 저는 떠돌이의 삶이었다고 봅니다. 건축 노동자로도 일하셨고, 소작농도 하셨고, 일용 근로자도 하셨고, 집을 떠나서 이곳저곳을 생활했던 분으로 봅니다. 그렇게 떠돌이 삶을 살아가면서 당시 유대 민족의 참혹한 현실들을 경험하면서 번민을 갖게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언뜻 체 게바라의 삶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제가 아르헨티나에서 살았는데, 그곳에 로사리오라고 하는 교육도시가 있습니다. 체 게바라는 로사리오의 부유한 가정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의사 공부를 마치지요. 그런데 어느 날 친구와 함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하지 않습니까? 아무런 번민이 없던 사람이 1950년대 초에 라틴아메리카를 돌아다니면서 그 참혹한 현실을 보며, 이것이 무엇이냐 하는 의문을 가지고 혁명의 길로 뛰어들지 않습니까? 부유했던 삶들을 뒤로하고요.

예수님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갈릴리를 돌아다니며 참혹한 현실을 보며 번민을 했으리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 그분이 예언자 전승에 접하게 됩니다. 어떤 연유에서 그렇게 되었는지, 선생을 만났는지, 아니면 당신이 득도를 했는지, 그 과정은 모르겠지만 그러한 생활 속에서 예언자의 전승을 접하게 됩니다.

그런데 당시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는 성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제관계 전승, 그러니까 제사장, 제의를 통해서 어떻게 용서를 받는, 이러한 것만 살아남아 있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예언자 전승을 접하면서 성찰을 하고 스스로 자각에 이르게 되지 않았는가 합니다. 그리고 이 현실을 타개할 것은 무엇인가?” 하는 성찰에 이르렀고 곧바로 실천 행동에 옮기게 되는, 그러한 과정이 있지 않겠는가 합니다.

 

성염

예수의 생애에서 사실 그의 죽음을 초래한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그거예요. 이분이 성전, 거룩한 곳에 가서 그곳을 때려 엎은 행동입니다. 이를테면 지금의 명동성당이나 여의도 순복음교회 같은 곳에 가서 제상이나 강대상을 때려 엎었습니다.

 

홍인식

그렇지요.

 

성염

어디에서 온지도 모르는 무명씨가 뒤집어엎습니다. 그리고 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지 말라.” 큰소립니다. “저 자 누구야?” 수석사제나 대제관 연줄 없으면 성전 근처에 좌판 하나 못 벌리는데, 제사 때 복전 올리는 자리니까 아낌없이 돈을 내고 장사꾼은 엄청난 폭리로 이득을 챙기고요. 그런데 남 등쳐먹는 도둑놈들아!” 하면서 쫓아내고 폭력까지 행사하며 난동을 부립니다. 소위 예언자의 기질이 폭발한 것이지요. 예언자 전승을 받은 겁니다.

메시아 행적도 처음부터 비틀어져요. 그분이 처음으로 메시아 의식을 갖게 된 시점을 보세요. 어떤 사람이 요르단강에서 정화의 세례를 준다니까 찾아가지요. 세례를 받다가 ! 내가 메시아네?”라는 걸 퍼뜩 깨닫지 않습니까? 성경에 나오지요. 어떤 성경은 본인이 깨달았다고 하고, 어떤 성경은 세례 주던 요한이 깨달았다고 하고, 또 어떤 성경은 주위 사람들이 보았다고도 합니다. 하여튼 자기가 메시아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러면 메시아로서의 뜻을 펴야지요. 메시아로서의 정치백서를 작성해야지요. 그게 유명한 유혹사화로 그려집니다. 악마로부터 유혹을 받지요.

장장 40일을 굶고 나니까 다 먹을 것으로 보이지요. 유대 광야는 다 돌입니다. 모래가 아니지요. 돌덩어리가 다 빵떡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저것을 당신이 다 빵으로 만들면, 경제 부흥으로 싸악대권 잡는 것 아무것도 아니다. 하루아침이다.” 그런데 나자렛 사람은 사람이 빵으로만 살지 않는다는 대답을 내놓아요. 저 사막을 전부 빵으로 만들어도 즉각 거기에 철조망 쳐 놓고 접근 금지! 발포 사살!” 이런 식의 경고판을 붙이는 집단이 있습니다. 인간들이 스스로 나누지 않으면 경제문제는 풀리지 않습니다.

그다음 태산의 꼭대기에 데리고 가서 권력과 손잡아라. 유대 지도층과 손잡아라.”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면 이 세상, 권력이 다 네 것이다는 것이지요. “나에게 절만 하면 다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 외에는 아무에게도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고 대답하지요. 그러니까 메시아로서 대권을 잡을 수 없는 방침을 당신 정책으로 채택한 겁니다.

세 번째도 유명합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져서, 로마 성베드로 성당 꼭대기에서 거꾸로 떨어져서 머리가 깨어지지 않으면 대단한 기적이지요. “우와, 드디어 메시아 왕림하셨네!” 하겠지요. 하지만 나자렛 사람의 메시아 정책은 하느님을 시험해서는 안 된다.”입니다. 종교인들이야 하느님께 이만큼 복채를 올렸으니까 하느님도 이만큼 내놓으셔야 하고, 뭐가 안 풀리면 나처럼 헌금도 잘 내고 예배도 잘 가고 착실하게 살아왔는데하면서 하느님께 따지지요. “하느님, 이렇게 하시는 게 아닙니다.” 하고요. 메시아의 이 위대한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왜 2000년 넘게 걸렸는지 안타깝지요.

 

홍인식

그런 면에서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가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삶처럼 예수님이 자각했던 그 과정을 한번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 없이는 종교는 자기 기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 민중들의 삶이 어떠한지,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외면하는 종교는 결코 예수님을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이 가르침입니다. 그런 면에서 해방신학이 우리들에게 핵심적인 예수의 가르침을 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한국 교회나, 가톨릭이나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방신학을 통하여 모든 전반적인 종교가 현실에 대한 인식, 현실에 대한 참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성염

구체적인 체험 없이는 예수의 메시지가 절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태어나자마자 이집트로 피난을 갔습니다. 이건 완전 난민 생활, 보트피플이지요. 귀국해서도 가서 산 곳이 갈릴래아입니다. 아다시피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가 성경에 계속 나옵니다. 예수가 갈릴레아 출신이었어요.

 

홍인식

그렇지요.

 

성염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이유가 거듭 나오면서 이 사람은 처형해야 한다.” “?” “갈릴래아에서 왔으니까?” “?” “갈릴래아에서 예언자가 나온다는 말이 없다, 성경에. 그러니까 죽여도 된다.” 옆에서 누군가가 항의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법적으로 처리해야 하지 않소? 그래도 검찰조사해서 재판을 하고 죽여야지 당정회의에서 사형언도부터 내려놓고 그다음에 현상 수배하는 법이 어디 있소?”라고 니코데모라는 사람이 이의를 제기합니다. 그의 발언을 한마디로 묵사발시킨 반문, “당신도 갈릴래아 사람이야?”

그러니까 그 집단적인 지역 이기심을 총동원해서 지역감정으로 메시아를 제거해 버린 유대인들! 그는 그렇게 평생을 수모를 겪으며 살아왔습니다. 그 어머니가 베들레헴까지 가서 벌써 양수가 터졌는데도 여관방을 얻지 못한 이유도 갈릴래아 여자였기 때문 아니겠어요? 갈릴래아 사람한테는 방이 있어도 안 주지요. 그렇게 자기 체험 속에서, 이집트 피난살이, 그다음 갈릴래아 사람으로서의 지역감정과 천대, 여기에서부터 나자렛 사람의 해방신학이 나온 것이지요.

가톨릭교회의 십자가에는 꼭 사람 형상을 매달아 놓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사형수의 죄목이 적혀 있습니다. ‘INRI’라고 약어로 써 붙입니다. INRI유대인들의 왕 나자렛 예수라는 뜻입니다.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에서 첫 글자만 딴 것이지요. 빌라도라는 사람이 예수가 무죄함을 확인하고서도 처형하면서 내심 걱정했습니다. “그래도 한때 이 사람이 메시아로 추앙받던 사람인데 이 사람을 처형해 버리면, 더구나 오늘은 전국에서 촛불시위를 하러 전국에서 예루살렘에 모이는 날이어서 자칫하면 폭동시위로 번질 수 있는데.” 그래서 명패를 하나 써붙인 겁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그러면 행인들도 저 갈릴래아 사람? 아무렴, 갈릴래아 사람들은 씨를 말려야 해.” 하면서 나자렛 사람이 죄도 없이 처형당해도 전혀 이의가 없었던 것이지요.

 

홍인식

, 가책들을 덜 받는 겁니다.

 

성염

로마에서는 사람 이름에 출신지를 적지 않습니다. 그런 개념도 없고요. 그리스인들이 반드시 출신지를 이름 옆에 적었지요. 그러니 십자가 명패 나자렛 사람 예수에는 아주 고도의 정치적인 술수가 담겨 있지요. 그리고 예수가 욕을 얻어먹을 때마다 성경에 나옵니다. “저 나자렛 사람.”

 

홍인식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소위 호남, 전라도, 이러한 말로 표현는 것과 같군요. 저도 그러한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목사님 출신이 광주냐고 묻습니다. 전혀 전라도와는 상관이 없다고 말씀드리면, 전라도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체제 비판적인 그러한 생각을 하시느냐고 합니다. 이게 얼마나 잘못된 고정관념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그 말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봅니다. 옳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전라도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저도 옳은 이야기를 하니 전라도 출신 아니냐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거꾸로 호남 사람들이 옳기는 옳은가 보다고 농담으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5.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성염

아리스토텔레스 이전부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규정이 된 것은 정말 좋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해방신학의 맥을 보면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곳 함양 휴천재에서 살게 된 이유가 다름 아니라 아우구스티누스 저서들을 번역하기 위해서입니다. 홍 목사님 뒤편 제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이 전부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입니다. 오른편 중간에는 제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를 번역한 책들이고요. 아우구스티누스도 인간이 무엇인가?”를 고민했습니다. 인간은 생각하면 할수록 정말 위대한 신비거든요. 그러고는 인간은 사랑이다!” 이렇게 정의합니다. 논거는 간단합니다. 하느님이 사랑이에요. 그리고 인간은 성서상으로 하느님의 모상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사랑이지요.

아우구스티누스의 대표작 신국론의 핵심은 인간이 사랑으로 멸망하거나 사랑으로 구원받는다는 주장입니다.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사랑이 구원과 멸망의 길입니다. 인류 역사는 하느님의 도성과 지상의 도성으로 나뉩니다. 지상의 도성은 구원받는 범위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도성에 들어가는 여부는 사랑의 성격에 따라 좌우됩니다. 그러면서 사회적인 사랑사사로운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팔이 안으로 굽는 모든 사랑의 형태는 구원에는 미치지 못해요. 구원이라는 범위까지 들어가려면 팔이 바깥으로 뻗는 사회적인 사랑이라야 합니다. 이것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위대한 착상입니다.

처음부터 사회정의, 평화와 같은 문제를 고민하지 않으면 크리스천들이 구원받지 못한다는 가르침이에요. 개인적인 종교로 하느님에게 싹싹 빌어가지고는 구원이 안 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사회마저도 역사적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역사철학이 4세기에 확립됐습니다. 일찌감치 그리스도교에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렇다면 사회적 사랑이라는 게 무엇이냐 하는데 그것이 겨우 20세기에 와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에 의해서 규명되었어요. 그가 말하기를 사회적 사랑이란 정치다.”라고 단언했어요. 당신의 정치 활동에서, 당신의 투표에서, 당신의 후보 지지에서 당신이 사회적 사랑을 하고 있는지, ‘사사로운 사랑을 하는지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교에는 가난한 사람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해방신학에서, 메데인회의부터 만들어 낸 개념이에요. 크리스천은 어디에다 정치적 입장을 세워야 하느냐 묻는다면, 약자와 가난한 자들에게 혜택이 가는 것이 우리의 정치적인 선택 기준이에요. 그것을 21세기 들어오면서 밝혔는데, 그 이론적 토대는 4세기에 아우구스티누스가 만들었지요. “사회적 사랑이란 바로 정치다.” 그러니까 사회문제, 정치문제는 신도 개개인이 알아서 한다거나, 정치란 어차피 진흙탕의 개판 싸움이니 종교인들은 손을 털고 알아서 하라는 생각은, ‘사회적 사랑을 묵살한, 근본적인 종교 이탈이지요.

이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될 만큼 인간이 귀중합니다. 또 인간이라는 것이 자기 몸뚱이만 아니라 내 친구, 내 사회, 출신지, 사회계층이 다 나의 일부거든요. 그리스도교는 인간을 전인全人으로 보지요. 그리고 또 만인萬人이 공동선에 참여해야 한다는 개념이, 왜 그리스도교가 사회문제를 거론하는가를 풀어 줍니다.

 

홍인식

성 선생님께서는 아우구스티누스부터 시작해서 넓은 기독교교회사에서 말씀해 주셨는데, 저는 해방신학을 조금 더 좁은 면에서 보고자 합니다. 해방신학에서는 인간의 어디에 중점을 두고 있느냐 하면, 크게 두 가지로 봅니다. 자유와 존엄성입니다. 어거스틴부터 다 나왔던 이야기이지만, 인간은 어떠한 것에도 억압되지 않는 자신의 책임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자유인이고, 모든 사람은 존엄하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가난한 현실 속에서 약한 사람들이 인간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발견하고, 그 인간되지 못한 인간을 존엄한 인간으로 돌려주는 그런한 것이 해방신학이 가지는 중요한 인간론이라고 보게 됩니다. 현대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주로 경제가 인간됨을 결정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출발되는 인간의 존엄, 인간 자체가 인간됨을 결정하는 겁니다.

저는 아직도 기억나는 게, 2011년도에 홍익대에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의 투쟁 이야기가 있었지 않았습니까? 그때 저는 외국에서 살 때인데, 그분들이 출판한 책 제목이 아마 우리가 보이나요였습니다. 투쟁은 하고 있는데 어느 누구에게도 이분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지요.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면, 나와 같은인간이라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일 겁니다. 보이지 않기에 그냥 각자의 길만 갈 뿐입니다. 그분들이 주장한 것은 내가 인간인가? 어떻게 내가 인간이면 다른 인간이 나를 안 보는가? 하는 것이었지요.

그렇게 소외되고 잊혀졌던 인간성을 해방신학은 보게 됩니다. 인간은 인간 자체로서 존엄하고 그 존엄성은 인간이 자기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로부터 온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자유를 갖기 위해서는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자유와 인간 존엄성을 해방신학의 중요한 인간론으로 봅니다. 그래서 투쟁이 나오는 것이지요.

브라질의 한 어려운 시점에 지역에 가서 사제들이 일을 할 때, 농장 지주들은 소작농들을 절대 인간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해방신학 사제들은 그 사람의 인간됨을 돌려주려다 보니 인간론에 있어서도 지주들과 충돌되었지요.

그래서 해방신학의 신학은 인간 중심의 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되어 있던 초점을 인간으로 돌려놓았습니다. 우리가 쉽게 이야기하는데 신권주의가 되어야 한다고 그러지 않습니까? 저는 휴머니즘 중심이 되어야지 올바른 신앙이라고 봅니다.

 

성염

오랫동안 교황직에 있다 죽은 요한 바오로 2세가 있습니다. 단시일에 성인까지 되었는데, 그 사람이 1979년에 교황이 되면서 선언하고 자기 교황직의 좌표로 삼은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교를 그가 재정의했어요. 우리는 예수는 주님이이시다! 이 고백이 그리스도교다!”라고 생각하는데 그는 딴 대답을 찾아냈어요. “인간 존엄성에 대한 경탄, 그것이 그리스도교다.” 교회가 이것을 따라가면 21세기에도 존립할 의미가 있고 그게 없다면 존립할 필요가 없다고까지 했습니다.

 

홍인식

종교가 기본적으로 인간 중심이 되지 않고서는 오히려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동기를 주지 않을까 합니다. 왜냐하면 신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까? 예를 들어 스페인의 종교재판이 있지요.

 

성염

마르크스가 위대한 점이, 그렇다면 인간다움이 어디서 지켜지느냐를 묻고 기본적으로 경제에 있다고 대답한 일입니다. 경제적 능력이 없으면 모든 인간성을 상실합니다. 막연하게 , 인격을 존중해 주면 우리 본분은 다 했다는 식으로 종교인들이 눈 가리고 아웅하고, 그런 속임수를 쓰면서 사실상 기존 체제를 편들고 그 일부로 편입될 때, “경제력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다. 경제력을 박탈함은 인간을 죽이는 살인이다. 사회정의는 궁극적으로 경제 정의에 있다고 그리스도교가 대답합니다. 해방신학의 대답입니다.

 

홍인식

해방신학도 경제에 집중했던 게 그러한 것 때문이지요. 의존적인 경제, 종속적인 경제에서 탈피되어서 민중의 삶이 좋아져야 된다는 겁니다. 최근에 와서는 해방신학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신학적으로 굉장히 비판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마 거의 유일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성염

해방신학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 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데는 없습니다.

 

홍인식

, 맞습니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신학적인 면에서 어떻게 보는가 하면 우상숭배로 봅니다. 기독교의 모든 역사는 참하나님과 거짓 신, 우상과의 싸움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경제가 소수의 손에 잡혀 있고 대다수의 민중들을 억압하는 이 체제는 우상체제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교는 생명을 걸고 이것과 싸울 수밖에 없다 하는 신학적인 근거를 제공해 주지요. 신학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비판에 가장 앞장서는 것은 자랑스럽게 해방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해방신학을 하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번역서를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시장, 종교, 욕망이라는 책을 번역하여 냈고, 욕망사회라는 책도 얼마 전에 한겨레출판에서 나왔습니다. 사실 제가 아르헨티나에서 공부를 마치고 얼마간 가르치고 있다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아닌 또 다른 모양의 경제체제에서 살아 보자 해서 쿠바에서 만 4년을 살았습니다. 이론만이 아니라 사회주의 경제정책은 실제 어떠할까 겪어 보고 싶어서 실제로 똑같이 배급도 받으면서 그렇게 살았습니다.

성 선생님, 저는 그때 인류의 대안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아닌 인간 중심의 또 다른 경제체제를 남겨 두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인류에게는 희망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만이 옳다고 하면 인류의 미래는 없다고 저는 봅니다.

쿠바 이야기를 조금 더 하면 그곳은 아주 재미있습니다. 저는 굉장히 성경적이라고 보았습니다. 실은 지금은 무너졌지만 제가 살던 당시에는 그랬습니다. 이를테면 토지가 있으면 집은 개인이 소유할 수 있습니다. 내가 쓸 수 있고 내 명의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팔지를 못합니다. 죽을 때까지 내가 살다가 자손한테도 세습할 수 있고 아무 문제 없는데, 다만 팔지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소유권이 민중에게 있다는 것이지요. 성경적으로 이야기하면 하나님한테 있다는 겁니다. 나는 사용만 한다는 겁니다.

그다음 대부분 큰 기업들은 국가가 운영하는데, 개인들이 또 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내가 식당을 한다면 그렇게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돈을 더 많이 법니다. 그런데 제한이 있습니다. 아무리 내가 식당을 해도 당시 제가 살던 때는 의자를 12개 이상 못 놓았습니다. 그렇다면 점심 시간에 세 바퀴를 돌린다고 할 때 36명에게만 파는 것이지요. 그 외에는 팔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물론 다른 일을 하는 사람보다는 돈을 많이 벌지만, 그 차이가 오늘날처럼 100, 200배가 아닙니다. 그러한 면에서 조금 더 성경적이 아닌가, 기독교와 맞는 게 아닌가, 그러한 생각도 하게 되고요.

물론 그 속에서 욕망이 계속 나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한이 있어서 거기에 또 만족하고, 나름대로 너와 나의 차이가 크지 않으니 친구가 되더군요. 돈이 많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차이가 커 봐야 서너 배 차이밖에 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의 경우 뉴스를 들으니 이건희가 1900억 주식배당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 사람과 쉽게 친구가 되지 못하지요.

 

6. 해방적 삶의 실천

 

성염

크리스천들이 기도를 잘하지요. 누구에도 뒤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행동이 안 되면 구원의 대열에 못 들어간다는 것, ‘사회적 사랑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진실은 좀처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아요. 해방신학의 영향으로 구원이라는 개념을 총체적으로, 영과 육을 포함하고 개인과 사회를 포함하는 신앙심이 자리 잡았어요. 역대 교황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황은 프란치스코라는 이름 때문인지 모든 생명권까지 사회적 사랑의 대상으로 포함시켰지요. 그런 입장을 발표하자마자 미국 보수언론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로 교황을 지목했습니다. 지금 AI가 오니 한국에서만 3500만 마리의 닭과 오리를 살처분했지 않습니까? 구제역도 나왔으니 소, 돼지도 한 500만 마리가 또 죽어야지요?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것도 하느님의 창조물입니다. 인간이 먹고살기 위해서 키우는 것은 되지만, 병이 왔다고 이렇게 죽일 수는 없다는 겁니다.

세계정의든 환경문제든 종교인들이 앞장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의 가르침은 일반인들이 정치적 구호나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이지 않고, 할머니도 알아듣고 영감님도 알아듣고 애들도 알아듣는 평범하고 원칙적인 내용입니다. “종교는 인류 양심에 호소하는 보편적인 언어를 갖고 있다. 종교인들이 만약 제대로 화해, 평화, 나눔, 정의를 가르친다면 정말로 세상에는 변화가 있을 것이다.”라는 호소입니다.

지금 지구상에 그리스도교 신구교 합해서 20억입니다. 13억 가톨릭, 그다음 개신교, 정교회 합치면 한 7, 그다음 이슬람이 14억입니다. 아니, 인류에서 종교인 아닌 사람들이 거의 없거든요. 그러니까 종교들이 평화와 동정과 소통의 언어를 가지고 서로 공유할 수 있으면 지구는 구원받습니다. 최근 10여 년에 걸쳐 100만 명의 이슬람 남정들이 미국과 유럽의 폭격으로 죽었지요. 그러면서 100만 명의 이슬람 과부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500만 명의 이슬람 고아가 나왔지요. 지구상에 UN통계로 6,000만 명의 난민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악행을 크리스천들이 앞장서서 저지르면서 사탄을 쳐부수는 정의의 십자군이라고 자처합니다. 하느님이 안 계시면 죽은 놈만 불쌍하고 굶는 놈만 불쌍하고 없는 놈만 불쌍하지만, 하느님이 계실 때에는 그분의 지엄한 심판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결국 해방신학은 인간은 잘 먹어야 하고 또 진리를 알아야 하고 인간 존엄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외칩니다. ‘전인적 구원이라고 그럽니다. 영혼만 뽑아서 딱 천당으로 날려 버리는 게 아닙니다. 두 번째, ‘만인의 구원이라고 하지요. 모든 사람이 그러한 복음에 참여해야 하고 진리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합니다. 현실에서 가난 빼놓고 이야기하자고 하면 아무도 이의를 걸지 않습니다. 국정원도 경찰도 검사들도 경제 이야기를 빼놓으면 절대 손대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정의를 외치는 크리스천들에게 종북 좌빨이라는 욕설이 나온 것은 그 사람들이 경제 불의를 지적하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해방신학이 크리스천들더러 너희들은 우상숭배자들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아니다. 허울만 크리스천이다.”라고 손가락질하기 때문에 반격이 나옵니다.

 

홍인식

저는 조금 더 현실적인 면에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해방신학이 주로 현실과의 초점을 이야기하고 투쟁의 삶들을 이야기하거든요. 해방신학에서는 어떤 지역에서 사목을 하게 되었다고 하면, 그곳에 토지 문제와 같은 현실적 문제가 있을 때 그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기획하고 실천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말씀을 드리면 오늘의 사회에서의 해방적 삶의 실천은 자본의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기본이라고 봅니다. 자본의 욕망으로부터 벗어나야지 해방이 된다는 것은 사실 그렇습니다. 저도 목회를 하는데 조금 더 벌어야겠다, 쌓아 두어야겠다는 욕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면 안 됩니다.

자본적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는 해방적 삶을 또 어떻게 실천하겠는가 한다면, 무엇보다 첫 번째는 자신의 삶을 인류적인 가치, 다시 말해 신학적으로 말하면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으로 자꾸만 훈련을 해야 됩니다. 평화, 사랑, 평등, 조화, 이러한 삶의 가치로 훈련을 해야 하겠지요. 두 번째는 조그마한 일부터 실천적으로 참여를 해야 합니다. 저는 목사로서 나름 여러 가지 실천적 참여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가 받는 월급이 있습니다. 신문에서도 보도되었지만 더 받고 싶지요. 그렇지만 아들들도 다 독립했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 해서 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낮추다가 더 이상은 안 된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꾸준히 이야기합니다. 그 주시는 것도 제가 보기에는 많은 것이지요. 자본의 욕망에서 벗어나 필요를 보니까 저에게는 많은 것인데, 교회에서는 더 줄여 주지 않습니다. 교회의 체면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더 이상은 싸울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저대로의 해방적 삶을 실천해야 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머리를 짜 내는 겁니다. 우리 교회는 목사에게 너무 잘해 줍니다. 아파트 사택을 주지 않습니까? 관리비 등 모든 것을 다 줍니다. 그래서 집사람과 깎을 수는 없으니 영수증을 교회에 가져다주지 말자고 의논했지요. 그러니까 한 달에 40만 원 정도가 줄여졌고, 1년 계산을 해 보니 한 500만 원 정도의 절감 효과가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삶에 있어서 조그마한 실천을 한 것이지요.

저는 해방적 삶의 실천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곳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가겠는지를 고민하고 조그마한 것들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예를 들면 저는 매일 촛불을 향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늘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촛불연대와 같은 곳에 적은 금액이라도 후원할 수 있지요. 같은 맥락에서 몇 곳의 시민단체들에 적은 금액이라도 십년 이상 꾸준히 후원하고 있고요. 큰 개념에서도 보겠지만 작은 개념에서도 우리 각자가 해방적 삶을 실천할 수 있다고 봅니다. 조그마한 데서 어떻게 나름대로 실천할 수 있을까 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겠지요.

기독교인이 기업을 경영한다면 어떻게 기독교인으로서 정말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비정규직을 둘 수 있을까요? 안 되는 겁니다. 정규직을 고용하면 기업인들이 이야기하는 폐해가 무엇일까요? 결국 돈 조금 덜 버는 것이지요. 이익을 좀 못 남기더라도 기업인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대로 실천하는, 또 노동자로서는 노동자로서 노동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살아가고요. 그러한 해방적 실천적 삶이 퍼져 나갔으면 합니다.

 

성염

우리가 상황을 잘 인식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오늘날과 같은 정치적 상황에서도 어떻게 저런 사태가 벌어지는가, 어떠한 구조적 모순을 가지고 있는가를 해방신학이 잘 파악합니다. 특히 경제적인 문제에 있어서 마르크스의 사회분석을 응용하지요. 그러한 구조의 개혁을 위해서도 우리 사회체제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는 해방신학이 구체성 있는 답변을 내놓습니다. 따라서 우리 종교인들이 공부하고 나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해방신학이 가지고 있는 과제라고 봅니다.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느냐는 것에만 신경을 쓸 것이 아닙니다.

저는 교회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머지않아 선거가 있을 텐데 누구를 찍으라고 저는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으로서 생각해 보면 지금 체제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조금 더 잘살 수 있는, 하느님 나라에 가까운 체제를 제안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체제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보십시오.”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유럽에서는 100명 중에 3명이 주일예배를 나옵니다. 그리고 성직자의 평균연령이 70-80세입니다. 그리스도교가 머지않아 현재의 형태로는 없어진다는 징조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지 새삼 궁리하게 됩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는 말이고요. “그렇다면 이 사회를 정의롭고 평화롭고 나누는 세계로 만드는 복음화 전략을 꾸려 보자.  사람들이 이슬람이든 불교도든 가톨릭 신자든 개신교이든 상관이 없다.”

한마디로 사회 자체를 복음화하자는 전략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내세우는 새로운 복음화 운동입니다. 이분이 재미있는 점은 이야기가 아주 구체적이라는 점입니다. 남을 욕하지 말고, 투표 때는 또 어떻게 하고 하면서 구체적인 행동을 지적합니다. 국제 언론은 20148월의 교황 방한이 세월호로 시작해서 세월호로 끝났다고들 하지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세월호 가족들을 만나 주고, 대전에 가서 만나 주었습니다. 또 광화문에서도 차에서 내려서 만나 주었지요. 또 어떤 사람들은 밤에 불러서 대사관으로 불러서 이야기하고 격려해 주고요. 행동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갈 때 비행기 안에서 세월호에 관한 기자의 질문에 고위 성직자가 나더러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며 이 배지를 좀 떼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어요.”라면서 인간의 고통에는 중립이 없습니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교황은 아르헨티나 극우 세력에 시달리면서 살아왔지요. 신학자로서 궁리만 한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현장 목회를 한 사람입니다. 현장의 경험 속에서 아르헨티나의 비극을 다 보면서요. 그러니까 그분이 말을 하면 상당히 신뢰가 갑니다. 이 사람이 교황이 되어서 처음으로 내놓은 것이, 내가 앞으로 교회를 이렇게 끌어가겠다는 복음의 기쁨이라는 문서인데, 이 문서가 차카게 살자!가 아닙니다. 철저히 경제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사람 죽이는 경제다.” “크리스천들이 그 세계를 따라가면 우상숭배자다.” , , , 돈 벌면 헌금도 많이 하고 착한 일도 많이 하리라는 각오는 허상이고, 우상에 대한 종속을 더 심화할 뿐이라는 것을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홍인식

, 성 선생님 말씀대로 거시적인 것으로 해방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고, 또 그것으로 비롯해서 세부 상황으로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제가 순천중앙교회에 와서 작은 것이지만 달라진 게 있습니다. 대부분 교회에서는 선교 지원을 할 때 교회 건축을 지원합니다. 그것도 하고 있습니다만 새롭게 NGO를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정치적인 NGO까지는 하고 있지 못하지만 예를들면 환경운동이나 도시정화를 위한 운동을 조금씩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보수적인 교회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이번에는 110주년 기념으로 해서 4월에 사회선교사를 한 분 파송하려고 합니다.

 

성염

좋은 일이군요.

 

홍인식

, 사회선교사는 반드시 목사가 아닙니다. 목사가 되어도 좋지만, 일반 사람일지라도 사회정의를 위해 수고하시는 분을 한 분 물색해서 교회에서 일정 금액을 지원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해방운동을 하시는 분이니, 되도록 교인이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다문화를 위한다든지, 노동자들을 위해서 한다든지, 거리의 노숙인을 위한다든지 하는 사회선교사 한 분을 파송하기로 교회에서 결정했습니다. 사실 큰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것부터 해방적 삶을 실천해 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7. 한국 교회가 있어야 할 곳

 

홍인식

저는 한마디로 한국 교회가 있어야 할 곳은 민중의 자리라고 봅니다.

 

성염

가난한 자들이 있는 곳에 같이 있어야지요.

 

홍인식

특별히 개신교가 1980년대 들어와서 급성장합니다. 천만 명까지 이야기하고 그렇습니다. 급성장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느냐 하면 저는 1960-70년대의 진보적인 민중교회들의 역할이 컸다고 봅니다. 열매는 다른 사람이 따 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1960-70년대를 거치면서 개신교, 에큐메니컬한 교회들은 민중의 편에 섰습니다.

저도 외국에서 살다 이곳에 와서 첫 번째 목회 활동을 한 것이 장신대에 재학 중 했던 신림동 빈민촌 사역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공부방 등을 무료로 운영하면서 의식화 운동을 했습니다. 1986년도였습니다. 조금 뒤늦게 뛰어들었지요. 사실은 1960-70년대 당시 한국 교회의 좌표는 바로 민중이었습니다. 그를 바탕으로 1980년대에 들어와서 급성장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그러면서 재정적으로 풍족해지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우리 한국 교회가 민중을 버리고 높은 자리로 가 버린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한국 교회가 위기가 거기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높아졌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특정한 교회를 이야기하기는 그러하지만, 다 아는 사실이니까요. 서초동 사랑의교회를 보십시오. 어떻게 한 교회가 그 당시 3,000억 원이라고 하는 돈, 달러로 하면 3억 달러인데, 그러면 아이티라는 나라가 1년을 운영할 수 있는 돈입니다. 어떻게 개교회가 3,000억 원을 들여서 교회를 세우겠다는 발상 자체를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민중을 잃어버린, 예수를 잃어버린 사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말이 안 됩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또 박수를 쳤습니다. 이러한 점에서부터 한국 교회에 위기가 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우리 교회는 다시 없는 자, 가난한 자의 민중의 자리로 내려가서 그들처럼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고 아주 깊이 생각합니다.

 

8. 한국의 해방신학, 민중신학은 왜 성장하지 않는가?

 

홍인식

성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또 민중신학자들이 잘못 알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의 차이라고 봅니다. 해방신학은 가톨릭에서 나왔습니다. 민중신학은 가톨릭보다는 한국의 개신교에서 나왔지요. 개신교의 전통과 가톨릭 전통이 조금 다른 것이 무엇이냐면 남미, 라틴아메리카에서 해방신학을 했던 사제들은 수도회 출신이었습니다. 예수회라든지요. 레오나르도 보프(Leonardo Boff)도 프란치스코수도회에 소속되었지요.

그래서 개신교 목사로서 생각할 때 가톨릭의 전통이 참 놀라운 것 같습니다. 비판할 것도 있겠지만, 부럽기도 합니다. 교회와 그 체제를 존중하는 것에 대해서는 가톨릭 사제들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 전통이 대단합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태어나서 교회 안에서 죽는 게 소원입니다. 물론 그 사람들이 파문을 당하기도 했지만 그러면서도 그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어떻게 그렇게 뚜렷한지 부럽습니다. 개신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깟 교회 그만 두자, 우리는 우리대로 단체로 하겠다고 하며 교회를 쉽게 떠나기도 합니다.

그다음 두 번째 중요한 것은 라틴아메리카 가톨릭 사제들은 수도원 출신이다 보니 영성이 풍부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사회학을 중심으로 해서 신학을 전개했음에도 불구하고 가톨릭의 그 깊은 역사적 전통 속에서 성경과 영성의 문제를 붙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해방신학이 계속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그러한 원동력이 아닌가 합니다. 그에 반하여 우리 민중신학은 너무 정치화되었고 사회화되어 교회와 성경, 영성을 조금 벗어난 게 아닌가 하는 저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신학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 중심의 신학이라 할지라도 성경과 영성, 교회라는 그러한 전통 속에서 활동하며 이 사회를 향해 이야기해야 되지 않겠는가 합니다. 그래서 해방신학자로서 교회 목회를 하는 또 다른 저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교회를 부정하지 않는가? 하는 겁니다. 교회가 엉망입니다.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그만두고도 싶지만,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 교회를 어떻게든지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오려고 하는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목회에 충실하고 해방신학을 어떻게 요리를 잘해서 교인들에게 좋은 음식으로 대접할 수 있겠는가 하는 노력을 하지요. 그래서 교인들이 홍 목사님은 교회를 무척 사랑해. 또 해방신학에서 교회를 해 나가려고 노력해.”라는 하는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야 살아남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한국 교회에 훌륭한 걸출한 인물이 없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러나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시대의 변화라고 봅니다. 근대에서 후기 근대로 넘어가고 또 후기 후기 근대로 넘어가는 이 시대의 패러다임 자체가 영웅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났지 않았는가 합니다. 후기 근대 사회에서 중요한 것이 메타 내러티브가 없어진 것 아니겠습니까? 작은 이야기들이 나오게 되는 패러다임의 변화에 영향을 조금 받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물론 걸출한 인물, 영웅이 나와서 이러한 것을 지도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아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작은 지역에서 작은 이야기들로 작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보아도 되지 않겠느냐 생각을 합니다.

오히려 영웅을 만들어 냈던 시대를 지금 결과적으로 보면 그들이 만들어 낸 전설적인 이야기들도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얼마나 또 민중운동이 실망을 주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요즘 시대에 영웅이 없다고 하는 것보다도 작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는 작은 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최근 인명진 목사를 보십시오. 우리 젊었을 때 영웅이었거든요. 주 예수를 위해 민중운동에 투신하는데 가정을 돌볼 틈이 어디에 있느냐고 결혼하지 말라고 했지요. 결혼한 사람한테는 투신을 위해 또 아이를 낳지 말라고 했습니다. 한때 저도 자식을 낳지 않으려다 낳게 되었지만 당시 그 영향을 받아 가슴에 불이 붙었었지요.

 

성염

해방신학이라는 것이 라틴아메리카에서 크게 타격을 받았습니다. 당시의 국제 정세와 연관이 있습니다. 제가 주교황청 한국대사 생활을 하면서 관찰해 보니 1980년대에 동구권이 흔들리더라는 겁니다. 동구권이 흔들리면 교황청에서 보기에는 라틴아메리카가 민중봉기로 해서 사회정의가 이루어지는 일보다, 현실사회주의 집단이 무너지고 동구권의 종교의 자유가 확보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교황청이 마르크시즘을 빌미로 해방신학을 타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제프 알로이스 라칭거라는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교황청의 검찰청 격인 신앙교리성 장관을 한 20년 했지요. 그러고 나서 교황이 되어서 현지에 가 보니 라틴아메리카 가톨릭이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개신교는 크게 확장되고 국민의 사회의식은 다 없어지고 신앙생활에서는 성령운동만 남았지요. 성령운동은 레이건이 엄청난 돈을 들여서 보급한 것으로 의심을 받았습니다. 미국은 성령운동으로 남미의 해방신학을 잡았다고들 합니다.

남미 가톨릭의 현황을 보고서 베네딕토 교황은 자기가 무엇을 했는지 깨달았고 , 내가 그만 두어야겠다는 판단에 이른 듯합니다. 또 그 교황은 교황청 검찰총장 자리에 해방신학자를 임명했어요. 지금의 교황은 구티에레즈를 교황청으로 불러 식사하고 같이 미사를 하고 신앙교리성 장관과 공동저서를 내게 했지요. 그러니까 해방신학을 살렸습니다. 아까 홍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신자유주의 경제에서 크리스천의 의식을 살려갈 수 있는 다른 신학이 없습니다. 늦게서야 깨달은 것이지요.

우리 민중신학이나 그러한 이야기를 하면, 우선 내가 그전에 이 책 말씀이 우리와 함께: 솔렌띠나메 농어민들의 복음 대화를 보시면 솔렌티나메라는 지역의 민중들이 성경으로 해방신학을 공부합니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니라 니카라과 혁명투사 카르데날 신부가 주관한 겁니다. 임 신부님이 이 원본을 주면서 번역하자고 제안해서 다 번역하지 않고 뽑아서 번역한 것이 분도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1981년이었습니다.

 

홍인식

솔렌티나메를 또 번역하셨군요. 저도 가지고 있습니다.

 

성염

우리나라에 민중신학이 있었듯이 대만에서도 유교문화를 가지고, 그리고 그다음에 스리랑카에서 불교문화를 가지고 해방신학을 시도했습니다. 그곳에서도 가톨릭 안에서는 맥은 끊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톨릭교회가 바티칸 당국의 처사로 엄청난 실수를 해 버린 겁니다. 사실 동구의 공산주의가 무너지는 것이 급선무이고, 남미는 어차피 그리스도교 세계니까 그곳의 군부독재와 경제 불의는 후차적으로 바로잡히려니 했을지 몰라요.

지금의 신자유주의는 그전의 공산주의 못지않게 인류 사회에 두려운 현상이에요. 그러니까 프란치스코 교황이 등장하자마자 신자유주의는 크리스천에게는 우상숭배다.” 그리고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이것은 사람을 죽이는 경제다.”라고 규정하여 인류의 양심을 일깨웠어요. 반발도 심해요. 그 문서가 나오고 일주일 후에 제가 교황을 만난 적 있는데, 미국 언론이 교황을 퓨어 마르크시스트(순 빨갱이)라고 했더군요. 교황이 경제문제를 다루니까요. “카차게 살자!” 정도에서 머무르면 무익 무해하니까 잠자코 있는데 경제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하니까 다르지요. 그자들의 논리가 케이크이론입니다. 커다란 케이크를 만들면 삼성 혼자서 다 먹지 못하니 국민에게 한 조각씩 돌아오리라는 논리지요. 교황이, 피케티 같은 경제학자가 쓴 비유는 술잔의 비유입니다. 술을 마구 따르면 잔이 넘쳐흐른다지만, 부으면 부을수록 잔이 커지는 장면을 상상하라는 것입니다.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잔이 계속 커져서 대한민국의 모든 구멍가게까지 다 먹어도 재벌은 양에 안 차는 겁니다. 교황의 그런 지적에 현재까지 아무도 대답을 못 합니다. 교황은 인간 탐욕을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해방신학만이 현 21세기에 들어 제3차 세계대전을 막으면서 인류에게 자신을 반성하고 걸음을 늦추게 하는 유일한 신학입니다. 교황이 해방신학이라는 용어는 쓰고 있지는 않아요.

예컨대 한국은 중산층 교회가 되었습니다. 사회 지도층, 엘리트 계급이 퍼센트로 따지면 굉장히 높습니다. 교황이 한국에 오자마자 한국 주교들한테 중산층 믿지 마세요, 중산층 교회 만들어 놓으면 가난한 사람이 못 옵니다. 대리석으로 깔고 3,000억짜리 건물을 지어 놓으면 슬리퍼를 신은 반바지의 가난뱅이는 못 옵니다. 그러니까 가난한 사람이 못 오는 교회는 그리스도교회는 아닙니다. 여러분의 사교 클럽은 되겠지만 하느님의 교회는 아닙니다. 중산층과 부자들은 언제라도 하느님과 돈을 두 마리의 말처럼 함께 부리는 것으로 변신할 사람들입니다. 절대 끝까지 그리스도의 제자로 남지 않습니다.” 라는 투의 말을 했지만 주교들이 못 알아들었습니다. 듣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요.

개인적으로 저는 한반도의 미래를 상당히 불안하게 생각합니다. 분명히 제 귀로 듣기로, 2차 이라크전이 터지던 날 새벽에 영국의 토니 블레어, 소위 레이건의 푸들 강아지라는 인물이 TV 화면에 나오더니 다음은 북한!”이라고 했습니다. 미국은 매사를 영국과는 의논합니다. 지금의 아랍 사태가 끝나면 미국의 전쟁터는 한반도 차례라는 말입니다. 저는 지금도 그 공포가 남아 있는데 우리 언론들은 다 잊어버렸더라고요

거기다가 현재 교황을 두고 전 세계 언론이 프란치스코 임팩트(Francis’ impact)’라는 용어를 씁니다. ‘프랜시스 충격이랄까요. 지금 세계를 장악한 신자유주의, 자본주의가 모두 도둑이고 살인자라고 규정하는 것도 충격이지만, 또 하나는 3차 세계대전을 이미 시작했습니다.”라고 교황이 단언했어요. 지금까지 그 말을 대여섯 번 했는데, 맨 처음 한 것이 2014818, 그러니까 서울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였습니다.

이 사람이 왜 그때 그 말을 했을까? 저는 생각합니다. 제주 강정마을 문제, 성주의 사드 배치,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이 계속되고 최근 미국 상하원에서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현재 트럼프는 정말 그런 짓 할 사람이고요. 이런 사태에서 크리스천들이 신구교를 막론하고 저런 메시지를 알아들어야 하는데, 알아듣지 못합니다.

지구의 현황을 생각한다면 그래도 세계 종교들은 구원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지금은 전쟁으로라도 때려 부수자.” “정의의 십자군을 외치는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이 세력을 떨치고 가톨릭 안에서도 소수의 극우들이 준동하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종교는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고 화해와 나눔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지요. 다행히 천주교는 정의구현전국사제단40년 넘게 줄기차게 남북 화해, 민주와 인권, 경제 정의를 외치며 활동해 왔지 않습니까? 그들의 메시지들이 국민들에게 꾸준히 전달되고 있지요.

 

9. 한국 사회의 당면 현실과 과제

 

성염

크리스천들은, 해방신학을 펴는 분들은 낙관주의를 잃으면 안 되지요, 누구보다도. 왜냐하면 인간들로만 역사가 이루어진다면 가망이 없을 때가 많은데 하느님과 인간이 함께 역사를 이루어 간다는 뜻에서 보면 희망이 있어요.

우선 첫째로, 국내 정치로 보더라도, 인간들은 자주 실수를 합니다. 사고를 치지요. 우리가 4·19를 이루고서도 5·16으로 빼앗겨 버리고, 10·26 후에 12·12, 5·186월 항쟁을 또 기득권 세력에 빼앗겨 버리고 했습니다. 인간은 그런 식으로 어리석지만 소위 하느님이 역사의 공동주체시라면 이야기가 달라요. 하느님은 항상 네비게이션 역사를 쓰셔요. 인간들이 사고를 친 바로 그 지점에서 하느님이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작년 4·13 총선 이전에는 굉장히 암울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뚜껑을 열어 보니 결과가 달리 나왔습니다. 그리고 박근혜나 새누리당이 저렇게 한꺼번에 무너지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어요? 많은 크리스천들과 많은 활동가들, 자기를 희생한 분들의 헌신의 결과라고 보고 있고 특히 젊은이들이 이번에 촛불시위에 나오고 일반시민들이 온 가족과 더불어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번만은 상당히 오랫동안 효과가 갈 것 같습니다.

둘째, 경제는 사실 전 세계가 경제가 어려우니까 나라마다 장벽을 쌓고 민족주의로 갑니다. 트럼프가 대표적인 깡패가 되어 버렸는데 경제가 잘 풀려야 마음에 여유가 생깁니다. 그런데 사실은 몇 개의 금융 재벌들이 전 세계를 장악하면서 마음대로 사건을 만들고 전쟁도 일으키고 시장을 조작하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외교관 생활을 할 때 타국 대사들이 제게 늘 말했습니다. “남한과 북한만 문제가 풀리면, 당신네는 일본 뺨 칠 정도로 성장할 텐데. 북한은 손재주 좋고 지하자원 있고, 그다음 언어 문제도 없고, 남한은 기술을 가지고 있고 유통 구조를 가지고 있고..” 그런데 친일 세력이 재등장하니까 그런 활로를 딱 잘라 버리네요.

대선 정국요? 핵문제를 보세요. 제가 대사로 부임한 이듬해 2004년에 북핵 문제가 바로 터졌습니다. 신임장 제정을 하던 2003년에도 요한 바오로 2세와 이야기를 했는데 교황이 그랬습니다. 북핵 문제는 공평하게해결해야 한다, 검증이 가능하고 철저하게요. ‘공평하게라는 말마디가 문제였습니다. 핵무기는 북한이 만드는데 왜 우리에게 공평을 이야기할까? 그런데 국제사회가 볼 때는 남한은 언제나 미국의 핵우산을 쓰고 있다는 것이지요. 북한의 재래 무기는 남한과 비교가 안 되고 더구나 미국의 최신 무기와는 게임이 안 되니까 북한이 의지할 데가 핵무기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뉘앙스가 풍기는 말이었습니다. 문제는 이것을 풀 수 있는 정치 지도자가 나와야지요.

저보고 누구를 지지하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명박부터 지금까지 8년 동안 주류 언론이 꾸준히 한 사람을 놓고 공격했습니다. ‘노패’, ‘문패가 보수언론의 노래였어요. 8년을 두고 한 사람을 공격하면 기득권 세력이 실질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이 사람인가보다 추측할 만하지요. 이렇게 저는 문재인 씨에게 승산이 있다고 말할 정도가 되는데, 안철수 씨는 안보 문제만 나오면 당장 보수로 돌아섭니다.

누구든지 남북문제를 풀어서 지금의 미·중 갈등, ·일 갈등을 해결해 갈 사람이 활로를 열어야 한다고 봅니다. 트럼프가 북한에 핵무기를 쏴 버려!” 하면은 그쪽에서는 얻어맞겠지요. 그다음에 저쪽이 갖고 있는 반격 무기를 날려 버리면 한반도는 끝장이지요. 핵무기 아니더라도 지금 영남에 전부 다 가져다 놓은 핵발전소를 공격하면 우리 민족은 영구적으로 파멸하고, 주변의 열강국에는 강 건너 불구경이겠지요.

끝으로, 종교가 문제입니다. 가톨릭교회를 대표하는 지도자로서도 교황이 지금 전 세계에 이미 세계대전이 발발했다고 우려하는데 이 전쟁의 주도 세력이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이에요. 사실 이슬람은 수세이지요. 두들겨 맞으니 저렇게 나오지 그 사람들이 먼저 공격하는 건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교의 세계가 평화를 이루지 못하면, 지금의 침략전쟁을 무슨 십자군처럼 떠벌이면 하느님 앞에서도 인류는 생존 가망이 없다는 비극적인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어요. 정작 한국의 종교인들은 어떤가요? 목회자들이 특히 대형교회들이 이런 위기를 두고 반공만이 살 길이요, 북한을 때려잡는 길만이 평화의 길이다,”라고 외치면 기득권은 득세하겠지만 하느님의 손길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같습니다.

종교는, 일반인이 믿기로, 대중적인 평화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평화 언어에 입각해서 남미에서는 해방신학이 소공동체운동을 했지요. 기초공동체라고도 불렀어요. 김수복 선생은 지난 30년간 꾸준히 남미의 해방신학을 한국 사회에 보급했지요. 그러니까 성서와 결부시켜 해방신학을 펴내는 사람이지요.  홍 목사님의 목회 현장에서도 그럴 것이고, 또 사제단 신부들이 사목하는 성당에서 그렇고요. 아무튼 종교가 가장 평균치이고 설득력 있는 평화의 언어, 국제 세계의 공존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한스 큉이라는 신학자의 논변입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고 노래하는데 한반도가 쉽게 지상에서 사라지겠습니까? 민족 공동체라는 게 그리 쉽사리 사라지지 않아요.

 

홍인식

저는 한국 사회의 당면 현실, 그리고 과연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 하는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한국 사회의 현실과 과제를 우리 교회에서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저는 40년을 외국에서 살다가 왔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 느꼈던 것이 무엇인가 하면 죄송하지만 왜 이렇게 거짓이 많을까? 그게 제일 먼저 와닿습니다.

 

성염

, 그럴 겁니다.

 

홍인식

왜 그런가 하면 식당에를 가면 한우라고 쓰고 비싸게 받습니다. 나중에 보니 또 유기농이라고 해서 비싸게 파는데 또 아니기도 하고요. 그때 생활의 지혜를 얻었습니다. 나는 한우 먹지 않고 유기농 안 먹는다. 왜냐면 어차피 가짜인데 비싸게 낼 이유가 뭐가 있느냐? 하는 그렇게 비참한 현실을 제가 보았습니다. 그래서 말을 하는 게 전부 다 거짓말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왜 이렇게 정직하지 않을까?

그다음 두 번째 느꼈던 것은 40년 만에 돌아오니 그전에는 어떠했는지 몰라도 최근에는 사람들이 예의를 지키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를 동방예의지국이라고 그랬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다음 점점 살면서는 어떠한 것을 발견했는가 하면 아, 예의를 지키는구나, 자기 사람한테만. 자기 안에 들어 있는 사람, 끼리끼리라고 할까요? 바깥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전혀 배려가 없는 사회인 것을 조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크게 우리 한국 사회가 앞으로 우리가 조금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정직한 삶을 살아가야겠고, 그다음 배려의 범위가 나의 테두리를 벗어난 이웃으로 확대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과제에 대해 몇 가지 생각을 더 해 보면, 한국 사회가 대선, 탄핵이라는 당면 과제가 있지만 그런 것을 넘어서서 궁극적으로 우리가 공평과 정의를 기반하는 사회를 건설하자고 하는, 공동체적인 동의가 있어야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다음 남북문제도 우리가 맞이한 가장 큰 과제라고 볼 수 있겠지요. 남북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젊은이들의 미래도 없고 우리 나라의 미래도 세계 역사에서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합니다. 제 아들은 외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미국 유학을 가서 독립했습니다. 군대를 가지 않으니 얼마나 부모로부터의 성장과 독립이 빠른지요. 그런데 한국에 오면 한참 발전해야 할 나이에 어쩔 수 없이 군대를 가야 하고 거기에서 일단 멈춰집니다. 그런데 기득권에서는 어떻게든지 군대를 가지 않습니다. 그 시간에 발전을 합니다. 그러니 발전하다가 멈춘 아이는 돌아왔는데, 기득권층은 어떻게는 빼서 그동안 발전해 있으니, 경쟁이 또 안 되지요.

우리나라의 많은 모순들과 정치적 탄압은 남북 분단에서 비롯됩니다. 북한에서 쳐들어온다는 식의 이러한 문제가 정말 해결되지 않고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저는 남북문제, 평화의 문제의 해결을 이사야서 11장에서 그 근거를 하나 찾습니다. 이사야서 11장에서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사자가 암소들과 함께 살고, 늑대가 어린양과 함께 뒹굴고,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어도 괜찮은 나라입니다. 그것이 평화의 나라라고 합니다. 암소와 사자가 같이 한 방에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가를 생각했을 때 내린 결론은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사자가 늑대가 뱀이 강한 자들이 약한 자를 잡아먹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 힘을 포기하면 됩니다. 아무리 암소와 어린 양들이 우리 사이좋게 놀자고 해도 사자가 잡아먹겠다고 하면 평화는 없습니다.

남북문제도 그러합니다. 북한이 핵 무기를 가졌다고 하는데 한 방에 전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 내 코앞에서 칼을 휘두르는데 그럼 나는 어떻게 하고 있어야 하나, 연필 칼이라도 쥐고 나도 네 얼굴이라도 그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만 되지 않겠느냐 합니다.

그러니까 남북문제를 풀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더 힘을 가진 우리들이, 손을 놓아 주어야지요. 경제력도 남한이 더 세지 않습니까? 지금은 북한과 비교가 되지 않지요. 그것의 정치적 실현이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이라고도 볼 수 있지요. 성서적인 면에서요. 그래서 미국과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북한과의 입장에서 대폭 양보하는 정책을 쓰면 마주 서는 것보다는 평화가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합의를 이루어 내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런 이야기를 교회에서 하면 또 빨갱이로 몰리겠지만 한번 거꾸로 생각을 해 보면 바로 동해 앞바다에서 난리를 치는데 나도 뭐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평화를 생각하는 강한 자의 포기를 우리가 생각해야 하겠지요. 특별히 기독교회는 이사야서의 하나님 나라를 믿고 있다고 하면 더욱 더 그러한 정책들, 경제 지원이라든지, 개성공단 문제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한국 사회의 현실에 있어서 이를테면 강정마을의 경우에는 우리 기독교회가 발벗고 나서서 반대해야 될 문제이지요. 개성공단 폐쇄했을 때 우리가 십자가를 들고 광화문을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리하지 못하고 오히려 박수를 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요. 한국 교회가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남북문제를 대한다면 평화를 이루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로 한국 사회의 현실은 경제 발전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위한 경제 발전인가 하는 겁니다.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야 될 것 같습니다. 한국에 와서 우리 교회 장로님이 제가 목회를 시작한 강남 테헤란로를 보여 주면서 목사님이 떠나가셨을 때보다 우리나라 많이 발전했지요?” 하셨는데, 저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발전이 무엇인가? 건물을 세우고 개인 소득이 늘어나는 것이 발전인가? 생명의 풍요로움이 늘어나는 것이 발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경제가 자본 축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생명의 풍요로움을 위한 경제 발전이라는 국가 목표를 정하는 게 과제라고 봅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문화적인 면에서의 다양성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다문화 사회가 되었습니다. 저희 교회 교인들도 다문화 가정이 많습니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훈련이 안 되어 있지 않습니까? 서양처럼 다양한 게 없어서 흑인이 오면 백인을 보는 것과 다르게 봅니다. 다양성의 문제들을 앞으로 우리나라가 국가정책으로 잘 다루어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는데,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다양성 속의 일치를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저는 그것도 벗어나야 한다고 봅니다. 다양하면 다양하지 왜 또 일치를 구하는 건지, 다양성 속에 일치가 아닌 조화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베트남 사람이 우리나라에 시집을 와서 산다고 하면 네 것을 버리고 우리 것을 취하라는 게 아니라 그냥 베트남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지요. 그것을 다양성 속의 조화라고 봅니다. 그것이 우리 한국 사회의 현실적인 과제입니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몇십 년 후에는 엄청난 사회 분열이 오지 않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한국 사회의 미래를 낙관하는가에 대해서는 한편으로는 조금 답답합니다. 왜냐하면 이번 사태를 겪고도 황교안 씨 지지율이 15-20% 정도가 나온다는 사실에 절망적입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성 선생님 말씀대로 우리 기독교인들은 희망의 씨를 볼 수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지배층이 변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희망을 걸지 않습니다. 지배층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희망을 얻느냐 했을 때 누가복음 181절부터 나와 있는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가 있습니다. 과부가 억울한 사정이 있는데 불의한 재판관이 들어주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과부가 밤에도 새벽에도 가서 문을 두드립니다. 그러자 할 수 없이 불의한 재판관이 할 수 없이 과부의 소원을 들어 주어서 일이 해결됩니다. 저는 그것을 보고 또 다른 희망을 겁니다. 지배층의 변화에 대한 희망을 걸면 오히려 우리는 투쟁의 의미가 없어집니다. 변하지 않으니 매번 해도 안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결국은 사회가 변했습니다. 사회가 변한 이유는 과부의 끈질긴 투쟁 때문입니다. 결국에는 해방신학자들도 마찬가지이고 우리 민중들, 그리고 올바른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끊임없이 투쟁을 하게 되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지배자들은 여전히 변화되지 않은 모습으로 반동적인 행동을 하겠지만, 끈질긴 과부의 두들김으로 사회는 변화한다는 믿음을 가진다면 우리 사회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 최근에 보았던 영화 암살을 떠올려 봅니다. 거의 마지막 부분에 극중 하정우가 전지현에게 묻습니다. “너 일제에 협조한 조선놈 한 명 죽인다r 조선이 독립된다고 믿느냐?” 그러니까 전지현이 독립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적어도 우리가 독립을 위해서 싸우고 있다는 사실만은 나는 알려 주고 싶다.”고 대답합니다. 이러한 것이 우리의 희망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낙관적으로 봅니다.

 

성염

그리고 국제사회가 감싸 주어야 합니다. 한반도의 긴장은 6자회담의 틀에서 이루어져야지요. 우리가 너무 친미로 기울어져있기 때문에 기득권층에서, 더구나 야당마저도, 일방적으로 미국의 손에서 놀아납니다. 한국의 기득권은 끝까지 6자회담을 거부하고 모든 탓은 북한으로 돌리고 북한체제의 자동 붕괴를 바라는데, 중국이 붕괴하게 놔두지 않지요. 더구나 지금 당장 붕괴하여도 중국이 손을 미처 못 쓰면 일본 차지밖에 안 된다고 봅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은 국제사회 곧 미국과 일본이 지금 현재 휴전선 이남만 대한민국 영토로 인정합니다. UN도 그래요. 더구나 우리나라는 전작권도 갖고 있지 않지요. 미국이 준다는 것도 안 받았으니까요. 그런 세계정세에서 유일하게 교황청만 ‘6자회담’, ‘남북대화’, ‘대북 식량 원조를 이야기합니다. 나머지는 전부 미국이 주도하는 UN의 대북 제재를 내세우지요.

그런데 제 경험으로 보아 교황이 국제 문제에 대해 한마디를 하면 전 세계의 언론을 탑니다. 우리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철저히 무시되지만, 전 세계가 교황이 무슨 말을 했고 따라서 인류 사회가 어느 쪽으로 가야 한다는 식으로 받아들입니다. 놀라웠습니다. 바티칸이라는 도시국가가 국제사회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했는데 그래도 13억의 가톨릭 신자들의 지도자더라구요. 지난 20159월에 교황이 미국 방문할 때도 CNN24시간 생중계를 하더군요. 그냥 한 꼭지, 두 꼭지 뉴스가 보도될 줄 알았는데. “아하, 저 인물이 국제사회를 향해 한반도 문제에 대해 발언을 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대사로 있던 5년간 교황청은 꾸준히 한반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 한 민족의 화해, 사회계층의 일치. 이러한 것은 다 그리스도교의 기본 가치관이지 않습니까?

 

홍인식

그렇지요. 성경의 관점이지요.

 

성염

그래서 그런 발언을 교황에게 요청하면 적극 나서서 해 줍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의 모든 언론이 묵살해 버리더군요. 가톨릭 언론까지도요. 기득권자들이 긴장 완화를 권유하는 교황청 발언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지요. 그렇더라도 교황청의 영향력을 국제적으로 이용하면 한반도 긴장 완화에 실질적 가능성을 볼 수 있겠다는 게 제 경험입니다. 현재로서는 미국과 북한이 어느 쪽으로 튈지 모르는 데다 만약 일이 터지면 우리 겨레의 운명은 끝장나니, 우리 후손들이 걱정되지요. 우린 살만큼 살았으니까요. “차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라고들 하지만, 1, 2차 세계대전처럼 사람들은 하찮은 일로 얼마든지 불장난을 할 수가 있습니다.

 

홍인식

말씀하신 부분이 우리 사회에 큰 위협으로 존재하는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저는 종교인이다 보니 종교의 기능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종교는 결국은 인간을 위한 것이고 조금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기능을 가집니다. 사실 솔직한 이야기로는 천국이 있느냐 없느냐, 죽어서 가는 곳이 있느냐 없느냐는 아무도 모릅니다. 예수님도 그것을 이야기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예수님도 그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으시지 않았나 합니다. 그분의 삶은 여기에 관심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우리나라가 남북 화해를 이루고 나아가서는 평화협정, 그 뒤를 이어서 한 민족 공동체로 나아가는, 이러한 평화와 정직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 우리 종교인들이 성경적으로 예수님 닮아 가는 삶을 조금 더 헌신적으로 살아가야겠다는 결단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를 비롯해 제가 목회하고 있는 순천중앙교회부터 그러한 신앙을 삶으로 살아내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그래서 종교가 대한민국을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또 종교인이 아니지만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과 우리 종교가 조금 더 문호를 개방해서 서로 연대하는 일들이 벌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성염

홍 목사님, 림추섭 선생, 정진백 발행인, 김효은 기자, 지리산 휴천재까지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전에 내가 해방신학을 번역했다는 책임을 새삼 깨달았어요. 가톨릭교회 안에서는 이 신학이 다시 일어나고 있습니다. 왜냐면 해방신학이 21세기의 국제 문제와 가톨릭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구나.’ 하는 각성이 일고 있으니까요. 그 해방이라는 개념이 아니면 옛날로 돌아가 가톨릭마저 기복종교가 되고, 근본주의로 돌아가서, 모든 타인들을 증오하면서 사탄 취급하면서 파멸로 내닫겠지요.

 

홍인식

가톨릭에서는 살아나고 있는데 개신교에서는 아직 인정해 주지 않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을 만나 뵈어서 영광입니다. 제가 대학에서 강의할 때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책을 교재로 삼았습니다.

 

성염

감사합니다.

 

* 문책文責: 김효은

 

성염

가톨릭대학교 졸업 후 광주 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석사, 교황청 살레시오대학에서 라틴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와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 주교황청 한국대사를 역임했다. 우리신학연구소장 및 이사장, 서양고전학회장, 우리사상연구소장, 한국가톨릭철학회 이사 등을 지냈으며,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한국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천주교인권위원회 등에서 활동했다. 본 대담과 관련한 역서로 해방신학, 아시아의 해방신학, 아시아인의 심성과 신학외 다수가 있다. 저서로는 사랑만이 진리를 깨닫게 한다, 하느님을 만난 사람들등이, 아우구스티누스 주해서로 고백록, 신국론, 삼의일체론, 자유의지론, 참된 종교등이 있다.

 

홍인식

파라과이 아순시온대학교 경영학과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아르헨티나 연합신학대학원(ISEDET)에서 해방신학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목사로서 중남미 선교사로 25년간 사역했으며, 아르헨티나 연합신학대학, 쿠바 개신교신학대학, 멕시코 장로교신학대학교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순천중앙교회 담임목사이다. 저서로는 예수 그 2000년의 믿음과 사랑, 홍인식 목사가 쉽게 쓴 해방신학 이야기등이 있으며 역서로 시장, 종교, 욕망, 욕구와 시장 그리고 신학, 욕망사회, 통전적 선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