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620일 월요일, 맑음


마당 옆 층계 위 성모상 앞에 능소화가 꽃피울 날을 손꼽고 있다. 매해 능소화가 막 꽃잎을 열 때면 시샘하듯 장마비가 쏟아진다. 벌다만 꽃잎은 질어 떨어지고 꽃도 피워보지 못한 애기 봉오리들은 난폭한 빗줄기에 못 견뎌 송이 째 목숨을 버린다. 올 봄 유난히 아름답던 코스모스장미가 이젠 한참 때를 지난 여배우마냥 볼품없어 보스코가 말끔히 손질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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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꽃이 서글프듯 인간이 질 때도 서글프다. 점심을 일찍 먹고 부면장님 병문안을 하러 고대 구로병원엘 갔다. 어제도 병상의 남편을 딸한테 맡기고 문정리에 내려와 고추 심은 이랑에서 풀을 뽑던 임실댁을 보았다. ‘저 여인은 정말 생활인이구나!’ 지구의 종말이 와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옛 시인(원래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명구: 티티루스, 손자들  따먹게 배나무를 심게나!”)과 맞먹는 여인! 남편이 병상에서 세상을 하직하고 있어도 틈을 내서 내려와 고추밭을 매는 여인! 하지만 올 가을엔 붉은 고추를 앞치마에 따 담고 가을 좋은 볕에 고추를 말리며 남편과 함께 꼭지를 따던 날들을 그리워하겠지...


부면장님은 눈을 뜨기도 힘겨워 했다. 오른손엔 주사바늘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남아 있는 생명과 유일한 통로였다. 생명이 떠났을 때도 마지막까지 살아 있는 게 귀여서 나는 문정리에서 오가던 일, 함께 가서 맛있게 먹던 인월의 두꺼비 어탕집, 항아리 사러 단 둘이산청에 가자던 짖궂은 프로포즈 등을 그의 귀에 소곤소곤 떠올려주었다.


빨리 고향에 내려와 같이 강 건너를 거닙시다.” 그는 오래 전에 풍을 맞아 지팡일 짚고 혼자서 산보를 다니다 휴천재 마당에 들러 나나 보스코와 한참이나 얘기를 나누다 가곤 했다. 말은 하지만 이미 이뤄질 수 없는 얘기라는 걸 둘 다 알면서도 그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지나갔다.


그를 위해 기도하고 그의 손에 나무 묵주를 쥐어주고 손 좀 꼭 잡아 보세요.”라는 말에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 내 손을 꼭 쥐는 그를 병실에 남기고 나왔다. 이제 며칠 안 남은 그의 이승에서 나누는 마지막 악수. 우리 삶에서 이승에서 마지막 나누는 악수들이 얼마나 많던가! 아니, 자칫하면 우리의 모든 만남이 이승의 마지막 악수인 경우가 대부분이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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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뒤 호스피스병동으로 옮긴단다. 작은아들의 배려로 바오로라는 세례명으로 원목신부님에게 대세(代洗)를 받고 마음이 평안해졌다니 마지막 가는 길에 하느님의 손을 꼭 잡고 잘 떠나실 분이다.


병원을 나와 보스코는 혜화동으로 도올 선생과 함께 철학강연을 녹화하러 떠나고, 나는 그동안 만나고 싶었던 패친 이화씨를 만나러 인천 계산동으로 갔다. 이화씨는 단아한 몸매에 아름다운 얼굴과는 달리 대단한 생활인이었다. 수줍은 남편 몫까지 씩씩하게 살고 있었다. 그니의 라이프스토리는 정말 파란만장하고도 감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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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근처에 살 적에, 스물세 살의 처녀로 많이 아픈 홀아버지를 모시며 너무 힘들어 극동(기독교) 방송국 골목을 돌며 하늘을 향해 옐로우 카드 세장을 흔들었단다. “하느님, 더는 못 견딥니다! 내가 빨간 신호등에 뛰어들면 하느님도 빨간 카드 '아웃'입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라며 협박도 했단다


그런데 과연 그 협박이 주효했던지 정말 어디로도 빠져나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마다 꼭 그분이 기다리고 계시더란다! 많이도 아팠고, 그걸 이겨냈고, 그래도 이제는 비교적 평안한 인생의 후반을 걷는 사랑스런 그녀에게 앞으로는 행복한 날들만 기다리기를 기도한다.


인천에서 서울의 북쪽 끝 우이동까지는 한없이 멀다. 그래도 보고 싶던 사람을 한 번 씩 만나고 오면 흐뭇하다. 인천까지 가는 길에 순애씨 얼굴도 잠깐 보고 싶었지만 한 걸음에 한 사람씩에게만 올인하기로 했다. 아침엔 가까운 마을에서 옷가게를 하는 연주씨를 만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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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는 도올 선생이 300꼭지가 넘게 올리는 '인터넷철학강의'(www.hooz.com: 인터넷 도올서원)에서 무려 세 강좌를 함께 녹화하고서 자정이 다 되어 돌아왔다. 도올선생이 모처럼 집안 손주 살레시오회 김선오 신부와 통화하는 자리도 있었단다.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을 일반청중에게 소개하는 기회여서 보스코도 열강을 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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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올 선생과 함께 한 보스코의 아우구스티누스 강좌를 듣고 싶다면...

[후즈닷컴(www.hooz.com)] [My후즈닷컴] [학습중인강좌(패키지강좌)] → 

[서양철학사 51~55] (53~55강 명칭: “성염의 아우구스티누스”)

(제52강 15-25분 시간대역에 보스코에 대한 도올 선생의 인물평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