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마산 (2015.2.8)

이 겨레가 큰 내상을 입었구나 (고통의 신비 2)

(젊은 엄마들과 함께 드리는 로사리오)


우리 아들 서른셋 나이에 과월절을 지내러 예루살렘 입성하던 날을 내가 어찌 잊겠니? 온 시민이 성문께부터 겉옷을 길에 깔고 나뭇가지를 깔고서 다윗의 자손께 호산나!”를 외치더구나. 예수는 새끼나귀를 탔고 군중이 앞서거니뒷서거니 만세를 불러댔지. 예수가 예루살렘 갔다 잘못 되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하던 나마저 혹시 아들의 태몽이 이뤄지나 싶었으니까....


그러다 어제밤 늦게 겟세마니에서 예수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에 뜬눈으로 밤을 새고 총독관저로 달려와 보니 예수는 병영으로 끌려들어가 사형수나 받을 법한 채찍질을 당하고 있었다. 한 눈은 주먹에 맞아 뜨지도 못한 채로 한 눈으로 이 어미를 바라보던 예수의 시선에 온 몸을 떨었단다. 어렸을 적 집으로 달려오다 무릎이 깨져 엄마!”하며 울던 눈길 같기도 하고, 이미 시작된 고난에 어머니, 저 그만 하면 안 될까요?” 애걸하는 것 같기도 했단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나는 내 외아들한테 차돌 같은 얼굴을 해보였단다. “여기서 네가 신통력을 써서 사슬을 풀고 저 군인들을 해치우고 광장의 악인들을 처치해버린다면, 인류의 죄는 누가 속죄한단 말이냐?” 그리고 아들을 죽을 길로 내몰았단다, 이 어미가! (몇 해 전 멜 깁슨이 만든 영화에는 내가 안네 에메리히 수녀에게 들려준 이 얘기가 잘 묘사되어 있더구나.)


엊그제만 해도 예수한테 만세 부르던 군중.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도대체 그가 무슨 나쁜 짓을 했다는 말이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나는 이 사람의 피에 책임이 없소.”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지겠소.” 내 귓전에 아득하던 고함소리...


너희 겨레는 큰 내상(內傷)을 입었다. 작년 4월 국민을 TV 화면 앞에 모두 앉혀놓고 단 한 사람도 구해내지 않고 죽게 만든 사람들... 어미들은 제 자식이 언제 죽임 당할지 몰라 가슴 조이고 젊은이들은 정부가 국민을 살려주지 않는다는 불안에 떨고 있구나.


교황의 너희 나라 방문은 세월호로 시작해서 타인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는 가르침으로 끝났었다. 또 남의 고통을 동정하느냐 무관심 하느냐로 너희가 십자가에 달려죽은 내 아들을 믿는 신앙인인지, 돈을 하느님처럼 섬기는 우상숭배자인지 가름하라고 가르치고 갔건만 너희 성직자 절반, 신자들 대다수가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의 고통에 엄정 중립을 지키고 있다니!


간신히 합의한 세월호 진상조사마저 돈 든다’, ‘필요 없다는 핑계로 흐지부지 넘기자는 사람들은 그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지겠소.”라고 큰소리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나라의 돈 될 것은 추풍령 이남에 다 가져다 놓으면서 원자로마저 거의 다 갖다 놓았으니,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의 참사와 하느님 손가락도 너희가 잊지는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