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427일 일요일,


여보, 내일 새벽에 눈 뜨는 대로 차를 타고 서울을 탈출합시다.” 새벽 6시면 눈을 뜨는 나였지만 간밤에는 두 시 넘어 잠들어선지 잠을 깨고 보니 벌서 730. 잠결에 듣기로도 3시경부터 빗소리가 났었다. 빗소리는 엄마가 토닥여주는 손길 같아서 눈을 뜨지 못하고 꿈나라로꿈나라로 가라앉게 만든다. “여보, 그냥 아침을 간단히 먹고서 떠납시다.” “맘대로 하구려.” 그는 늘 내가 하는 대로다.


언제나처럼 집을 떠날 적마다 나는 뒷정리를 말끔히 한다. 부엌에 씻어놓은 그릇들을 찬장에 가지런히 정리해 넣고, 쓰레기를 흔적 없이 치워 아무도 다녀가지 않은 것처럼해 놓아야만 내 직성이 풀린다. 누가 우리 집에 오더라도, 내가 다시 와서도 맘이 불편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보스코는 컴퓨터와 책자들과 싣고 갈 짐들을 꾸린다. 다만 그가 쓰레기 버리는 일은 영~ 시원치 않아 내 손을 다시 거쳐야 한다. 그는 모든 것을 한데 뭉뚱그려 비닐봉지에 담아서 내놓기 땜에 여보, 오늘은 분리수거를 한번 가르쳐줄 게.” 하지만 아니, 안 배워도 돼!”라면서 도망가 버린다.


       지리산을 오르내리는 우리 소나타는 싣는 짐이 1톤에 트럭에 가깝다는 보스코의 불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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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와서인지 고속도로로 빠지는 시내도로도, 중부고속도로도 의외로 한가하다. 우리가 모르는 새에 고속도로변 산과 언덕은 미술공부를 많이도 해 두었다. 하느님은 붓도 안 가지셨는데 초록색들만 해도 어쩜 저렇게 화려하고 다양하고 음영이 다르게 칠해 놓으셨을까! 나뭇잎 하나 풀잎 하나도 같은 모양 같은 색깔이 없다는데... 보스코는 운전석 옆에서 주 저희의 주님, 온 땅에 당신 이름, 이 얼마나 존엄하십니까!”라는 시편 운율을 넣어서 감탄에 감탄을 거듭한다. 뭔가를 감탄한다는 것은 적어도 마음이 젊다는 표시여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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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랜드 휴게소에 들러 집에서 싸온 식재료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큰 손수건을 탁자에 깔고 양상추, 살라미, 삶은 계란, 올리브 토마토를 바게트에 얹어 먹었다. 우유커피를 곁들여... 이렇게 샌드위치를 차려내면 새우 버거를 사달라고 조르지 않으니까 다행이다. 과일과 후식까지 챙겨먹고 배가 불러 만족해하는 그의 얼굴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이래서 부부란 서로 기대어 그 기다란 세월을 보내면서도 질리지 않나 보다.

         인삼랜드 휴게소에서 "예쁜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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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받아온 부활달걀( 구워서 한 달은 간다나)과 사탕 과자들을 챙겨들고 동네아이들을 찾아간다. 가연네를 거쳐 네 형제가 함께 자라는 민영이네 집에는 셋째 미현이만 있었다. 과자를 주고 돌아서 나오려니까 차 한잔 하고 가셔요.”란다. (? 초딩 4학년이 웬 차대접?) 하도 신통하여 그 초대를 얼른 받아들였다.

 

       우리 마을 언덕받이에 있는 미현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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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혼자서 집에 있니?”(엄마가 읍내에서 수학을 가르치므로 내가 알기로 요즘은  온 가족이 읍내 아파트에서 지낸다.) 시골집이 너무 좋아서 엄마한테 이번 주말에 혼자서 밥해먹고 혼자서 지내겠다고 떼를 썼어요. 할머니, 저 앞산 좀 보셔요. 그리고 뒷 창에서 보이는 대무도요. 자연이 너무 아름다워요.” (어쭈~ 갈수록 내 입이 벌어진다.)


아이는 며칠 전 다도를 배웠노라면서 전기 포트에 물을 끓여 얌전히 무릎을 꿇고서 멋지게 차를 다렸다. 미현이가 팽주를 하고 내가 손님이 되어 우리는 마주 앉아 차벗이 되었다. 차맛이 어떠신가요?” “네에~ 차맛이 무척 좋습니다.” “할머니, 그럴 때는 차향이 아주 좋습니다라고 한 대요.” (어어쭈~~ 내 입이 다물어질 줄을 모른다.)


오늘 혼자 집에 있으면서 신발과 운동화 네 컬레 빨았어요. 찬장을 정리하고 집안 청소를 하고 보니 하루가 갔어요. 컴퓨터를 하고 싶어 아빠에게 전활 했더니 한 시간 허락을 받았는데 30분을 하고나니까 재미가 없어져 끄고서 책을 보는 중이이요.” "... ...??? !!!" 과자를 내오면서 하는 말: 차는 꿀떡과 함께 드셔야 하는데 ... 그냥 이거라도 드셔요.” "... ??? !!!"


아니,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쳤으면 저렇게 스스럼없이, 친구처럼 그러면서도 예의와 격식을 다 갖추어 어른을 대할까아이 부모의 자녀교육이 너무도 탄복스럽고 소녀의 행동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휴천재로 올라오는 내 발길이 공중에 붕 떠 있었다.


       미현이의 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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