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聖體대회의 意義

우리民族의 상처 省察계기로 삼자

 

                                                                                                              [중앙경제신문 1989.9.30]

 

민족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는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도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번뇌다." 이 말은 금세기 가톨릭교회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기조정신이었다(사목헌장 1항). 10월 8일에 한국을 다시 찾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 1984년 방한 때에 우리나라에 "분열된 세계의 상징"이라는 의미 깊고도 서글픈 별명을 붙여주고 있다.

 

반만년을 한 겨레로 살아온 배달민족이 美蘇의 정치 거래로 찢겨져 골육상잔의 내란이라는 비극을 치른지 40년이 되어가는데도 제국주의를 내세우는 동서의 분쟁과 군사독재의 폐악이 이 손바닥만한 이남 땅을 동서로, 빈부로, 좌우익으로 분열시켜만 가고 남북의 겨레 사이에 증오와 적개심만 키워가는 모습을 애석해 하던 뜻으로 풀이된다.

 

교황의 고언에 자극은 받은 한국 천주교회는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라는 표어를 내세우고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이 땅에서 개최하여 분단 44년의 민족의 상처를 함께 치유하는 길을 모색키로 하였다. 그 행사가 이번 주중에 서울을 중심으로 열리면 천주교 신자들은 이 나라의 참담한 분열상을 두고 하느님과 민족 앞에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며 참회하는 자세를 보이고자 애쓸 것이다. 따라서 이번 행사는 여의도 광장에서 그 교세를 과시하는 집회도 아니고 전세계에서 손님을 불러다가 치르는 종교 올림픽도 아니어야 한다.

 

어릴적부터 미술책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아서인지 나사렛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당하기 전날 저녁에 열두 제자들과 영이별의 만찬을 가졌다는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만찬 후에 예수는 제자 한 사람의 배반으로 체포되고 스물 네 시간도 못되어 재판․처형․매장까지 당한다. 그 뒤로 성찬식 또는 성체성사(聖體聖事)라고 일컫는 예식은 지금까지도 그리스도 신자들의 예배모임에서 중심을 이루며 일반적으로는 "미사"라고 부른다.

 

만찬에서 예수는 빵을 쪼개어 제자들에게 돌리고 포도주가 담긴 잔을 돌리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이고 이 잔은 많은 이를 위하여 내 피로 맺는 계약의 잔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해서 이것을 하여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전한다. 비참한 최후가 임박함을 예감한 예수는 자기의 죽음이 약자의 억울한 패배가 아니라 가난하고 힘없고 죄 많은 사람들의 살길을 마련하는 하나의 희생이라고 여기고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래서 "이것을 하여라!"는 스승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제자로 입교하는 모든 이에게 삶의 원리가 된다. 스승의 운명을 자기 것으로 삼는다는 자세다. 성찬식은 없는 사람, 있는 사람들 모두가 밥을 나누어 먹는 자리가 된다. 이번 행사를 준비하여 지난 1년간 한국 천주교 신자들은 "한 마음, 한 몸" 운동을 전개하면서 나눔을 배우고자 힘써 왔다. 성찬식은 새 세상이 오도록 내 한 몸을 대어주는 용기를 배우는 자리가 된다.

 

그래서 이 사회의 누룩이 되어 정치의 민주화에 이바지하고, 소금이 되어 경제정의의 실현을 돕겠다는 운동이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중이다. 끝으로 성찬식은 우리 민족공동체의 희망과 슬픔을 나누는 법을 익히는 자리다.

 

"세계성체대회"는 그동안 잊혀졌던 북한 형제들은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그들을 잊어버려야 할 원수, 마음 한 구석에도 담지 말아야 할 저주받은 원수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쌓였던 담이 얼마나 높고 깊었는지 몰라도 그보다 훨씬 높은 벽과 깊은 휴전선이 우리 가슴 속에 그어져 있었던 사실을 들여다보며 놀랍니다. 놀라기는커녕 당연하다고 생각해 온 사람이 더 많으리라고 여겨집니다. 무엇이 우리 민족을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이것은 문규현 신부를 북한에 파견한 사제단의 자기 고백이면 어쩌면 한국천주교 전체의 자기성찰이다.

 

수십년 분단 역사에서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신의 자비와 민족 사랑보다 반공을 더 중시하지 않았는지 살피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각성은 한국천주교회의 역사적 진로와 그것이 몰고 올 사회정치적 태풍을 예고한다. 북한동포 10명을 성체대회에 초청하고 수십명 사제들을 민족화해의 사절단으로 이북에 파견하려는 움직임도 같은 흐름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중앙경제신문 1989. 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