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827일 화요일, 맑음

 

두레방 아카데미가 내일 개소식을 갖는다고 유원장이 오전에 전화를 해왔다. 상임이사로 있으면서 별 도움을 못주는데 늘 미안한 마음이었고 특히 이번에 아카데미 첫 원장으로 장빈 목사님이 야심찬 발걸음을 떼시는 자리여서 직접 가서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이다. 더구나 90의 노구를 이끌고 특별강연을 하러 미국에서 오신 문동환 박사님과 두레방을 창설한 부인 문혜린(미국인) 여사도 오신다니 인사도 드려야겠고... 가는 길에 내일 아침에 간 기능을 알아보는 혈액검사도 하기로 예약을 해 두었다.

 

진이엄마와 얘기하다 일본여자들이 하듯이 혼자 남는(그것도 다 해 놓고 간 밥과 반찬을 내일 점심과 저녁 두 번 혼자 먹어야 하는) 보스코에게 카레라이스라도 해놓고 가야겠다니까 알아서 드시게 놓아두라는 말에 영 미덥지 않다. 빵기와 빵고가 어렸을 적에도 알아서 먹어!”라면서 집을 비우는 게 예사였는데 도대체 저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집을 비우면 알아서 안 먹으니 내 결혼생활 40년에서 나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될 실패가 있다면 바로 남편의 홀로서기 못 시킨 잘못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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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마다 살아가는 패턴이 다르고 익숙한 게 늙어죽을 때까지 이어가지만 엄마가 다해줄 게라는 식으로 남편을 돌보느라 여성학을 공부하는 친구들 앞에서마저도 나 이렇게 살다가 죽을래요.”라고 말하는 여자가 되고 말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친구들이 구제불능의 이 남자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용감한 여인들에게도 보스코는 지독히 짠한남자로 모성애를 자극하는지 그니들이 여성학상으로 유일하게예외로 봐주는 대상이 보스코다.

 

내 일기와 (요즘 새로 하는) 카톡의 제일 열렬한 벗이 보스코의 동창이고 대자인 종수씨다. 워낙 벗들의 모든 대소사를 살피는 다정다감한 분이어서 매사에  말이 잘 통한다. 보스코는 자기가 대자를 못 챙기니까 나라도 그와 친하게 지내서 다행이란다. 오늘 그이가 보내온 얘기들은, 대화를 주고받다가, 일기를 쓰다가 알맞은 단어가 그렇게나 안 떠올라(치매 초기 증상이라는데) 애를 먹는 내 얘기 그대로여서 많이 웃었다. (카톡을 주고받는 이들이야 읽어 알겠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던 이들에게 퍼 옮긴다. 어디서 퍼온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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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잔치를 치룬 사람에게 인사를 하려는데 마땅한 말이 잘 떠오르지 않는데 육순회갑이 퍼뜩 지나가 육갑잔치 잘 치루셨어요?”

울 부모님은 한 살 차이세요.”라는 말을 한다는 게 울 부모님은 한 살 터울이세요.”

소보로빵을 사오라기에 빵집에 들렀는데 주인아저씨의 심하게 얽은 얼굴을 보자 소보로 아저씨, 곰보빵 세 개 주세요.”

식물 인간된 젊은이의 병문안을 가서  아드님이 야채인간이 되었다니 얼마나 마음이..." 

커피전문점에서 한창 아프리카 얘기를 나누다 여기 아프리카노 두 잔이요.”

 

보스코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데 옆 자리에서 수사관한테 닦달을 받던 사람이 나도 아르바이트 있어요.”라고 해서 수사관이 어리둥절하더라나. 그는 자기 혐의에 대해서 알리바이를 입증하고 싶어하던 참이었단다. 얼마 전 방송인이 뉴스 앵커 첫 번 자리에서 오늘 예정된 소나기는 야구경기 때문에 취소되었습니다.”라는 실수를 해서 두고두고 놀림감이 되었노라 는 얘기를 읽기도 했다

 

530분에 보스코와 저녁을 앞당겨 먹고 나는 함양으로 나가 저녁 7시 서울행 버스를 탔다. 올라오는 차 안에서 그동안 찍어서 잔뜩 쌓인 사진을 정리하고 바빠서 대답 못했던 글도 보내고, 기사도 찾아 읽고, 요즘 사람처럼 폰에 코 밖고... 스마폰은 혼자 여행하는데 참 편리한 동행이 된다. 그러나 옆 사람과는 인사 한마디 "안녕히 가세요."가  전부였으니  씁쓸하다. 1020분에 강남터미널 도착. 전철로, 마을버스로 집에 도착하니 12시가 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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