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626일 수요일, 맑음

 

서울 집 작은 마당이 밀림이다. 생땅이어서 작년부터 거름을 하다 보니 (음식 쓰레기를 물로 씻어 짠물을 빼내고 EM과 흑설탕을 섞어 묻어왔다) 땅을 조금만 파도 지렁이들이 우글거린다. 거기 심은 취나물마저 허리까지 차게 올라와 있고 금낭화나 은방울꽃도 나무처럼 단단히 자라올라서 자기들이 풀인지 나문지 분수를  모른다. 그래서 오늘은 아침내 정원에 교통정리를 해 주었다. 너무 커버린 화초는 분수를 알아서 좀 겸손해지라고 뎅겅뎅겅 자르고, 꽃이 진 나무들과 들꽃은 새싹을 키워내라고 다듬어주었다. 안주인이 없다보면 규율이 영 안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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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에는 말남씨네 어린이집에 찾아갔다. 보스코는 가톨릭대학교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다가 강성위 교수님에게 점심 대접을 하러 청량리로 간 길이다. 서로 바쁘다 보니 이러다간 말남씨와 점심은커녕 얼굴 한 번 못 보고 떠날 것 같아서 반찬을 챙겨들고 가서 함께 먹었다. 말남씨는 한약 먹고 살 뺀 나보다 훨씬 야위어 있어 보는 마음이 영 아리다. “난 사기를 칠 줄도 남을 등칠 사람도 못 되는데 왜 어린이집을 시작해서 이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요즘은 더더욱 불면증까지 겹쳐 밤에 이 궁리 저 궁리 하느라 속이 지글지글 끓어 그렇게 뼈만 남았단다.

 

40여년 살아온 남편과 사별하고 두 아들은 멀리서 직장생활을 하고... “미망인(未亡人)”(남편 따라 죽었어야 하는데 염치없이 아직 안 죽고 살아 있는 죄인이라는 어감을 담고 있)이 되어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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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우정골드빌에서 우리 집 쪽으로 1층부터 4층까지 네 가족이 사는데 누군가 우리 골목에 담배꽁초를 수북하니 버렸다. 내 오기가 발동하여 그것들을 접시에 주워담고서 한 집 한 집 탐방하였다. 일층 지수네는 할아버지가 담배를 피우는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낚시터에 장사하러 가고 없는데다 베란다 창문쪽으로는 짐이 가득해서 담배꽁초를 버릴 위치가 아니었다. (용의선상에서 제외.) 지수엄마도 어느집에서 꽁초가 버려졌었는지 확인하러 내 뒤를 따라다니며 동행을 하였다.

 

2층 아줌마는 막 집에서 나오던 길이었다. 자기 아들은 이층 창문 앞에 담배단지를 놓고 쓰레기통에 버리며 내가 주워간 슬림형 꽁초로 보아 아들이 피우는 담배가 아니란다. (단지를 보여주어 용의선상에서 잠정 배제.)  3층은 하은네 고모집인데 남편은 거의 담배를 안 피우고 더구나 길에 버리는 일은 안 한다고  부인한다. (용의선상에 그냥 두어야겠음.)  4층엔 새로 이사 온 사람이라기에 벨을 누르고 담배꽁초 건으로 첫 대면을 하게 되어 미안하다면서 말을 거니까 우리 집엔 담배 피우는 사람 없어요.”라고 짜증난 얼굴로 대답하고는 문을 쾅 닫아 버린다. ("혐의가 짙음"이라고 적고 싶었는데 그 집안에서는 담배냄새가 안 났음.) 

 

, 네 집 다 꽁초투기를 안 했다고 부인하고, 내게는 가택에 들어가 수사할 법원의 영장발부도 없어 하릴없이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이렇게 형사 콜롬바의 방문수사는 헛걸음이 되어 그 꽁초들은 엄마 찾아 헤매는 아이처럼 내게 안겨 고스란히 집으로 돌아와 그냥 쓰레기통에 넣어졌다. 남은 길은 현장 잠복으로 현행범을  적발한다?

 

 내 "형사콜롬바" 모험담을 듣고서 내 "승질"을 한탄하는 보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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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터에 새로 들어선 원룸 건물과도 주민들의 "꽁초전쟁"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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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하신지 15년이 넘는 강성위 교수님은 많이 노쇠해지셨더라면서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거지와 교수가 평생 못 버리는 게 깡통과 가방이라는데 ) 택시비를 아껴 전철을 타고 돌아오는 보스코가 안쓰러워 창동역으로 차를 몰고 마중 나갔다. 유학 후 귀국한지 이태 만에 인사위원회의 절대반대를 무릅 쓰고 (보스코의 나이가 너무 많다, 철학전공자가 아니지 않느냐, 출신 학부가 가톨릭대라니...) 보스코가 한국외국어대 중세철학 교수로 채용되게 해 준 분이 강교수님이다. 1987년 일이다.

 

밤에 정엽이가 2층에 올라와 보스코의 컴퓨터를 봐 주고 참외를 함께 먹으면서 엄마가 오늘 외도(外道? 外島?)  가셨어요." 라고 한다. "전화하셨거든요. 회를 먹으면서 내 생각이 나셨대요. 저도 좋은 델 가거나 맛있는 걸 먹으면 엄마 생각이 나거든요.” 콧등이 시큰해지는 젊은이의 한 마디. “세상에 요즘도 이런 효자가 있나? 착한 부모에게서는 역시 착한 자녀가 열리는 법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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